저널리즘 연구./사회평론
저널리즘 연구./사회평론

광화문에서 오랜만에 조선일보 후배들과 저녁을 먹는데, 밤 9시가 넘자 편집부국장과 정치부장이 “들어가봐야 됩니다”라며 일어섰다.

이들의 예정된 코스였다. 남들은 한잔 마시고 다 집에 가는데 직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게 신문기자의 직업이다. 특히 신문사의 데스크급이 그렇다.

후배 둘 다 50대 중후반이다. 신문사로 가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는 이들의 등을 보면서 새삼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내가 떠나온 조선일보 편집국의 밤 풍경이 떠올랐다. 혹시 무슨 일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그 불확실성 때문에 이들은 편집국을 지키고 있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신문사를 나와 귀가 택시나 지하철을 탈 것이다. 만약 일반 직장처럼 오후 6시에 퇴근해 집에 불쑥 나타나면 아내가 “당시 신상에 무슨 일이 생겼어요”라며 걱정할 게 틀림없다. ‘저녁 있는 삶’은 이들이 신문사를 그만두면 누리게 될 것이다.

전공의들의 집단사직 과정에서 장시간 노동과 혹사가 많이 이야기됐지만, 우리 사회에서 장시간 노동과 혹사에 시달리면서 그에 상응한 경제적 보상을 못 받는 이들은 어쩌면 신문기자들일 것이다. 신문사 경영 자체가 어려우니 그럴 수밖에 없다.

이런 무대 뒤 조선일보 이야기를 해주는 <저널리즘 연구- 뉴스의 생산· 뉴스 생산자>라는 책이 최근에 출간됐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와 배진아 공주대 영상학과 교수(한국언론학회장)가 조선일보에 2021년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5개월간 상주하며, 조선일보 사람들이 매일 어떻게 신문 지면을 만드는지를 현장에서 관찰한 기록이다.

조선일보 논조는 누가 정하는지, 신문 제작에 누가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과연 경영진의 입김이 모든 걸 결정하는지, 편집회의의 풍경은 어떤지, 회의에서 무슨 말들이 오가는지, 기사 밸류는 어떻게 정하는지, 데스크의 불안은 무엇인지, 일선 기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전해준다. 언론학자들이 신문사 내부에 들어와 직접 관찰을 통해 책을 내놓은 것은 처음이다.

저자들은 일주일에 3일 정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조선일보 사옥에 머물며 뉴스 생산 과정을 관찰했다고 한다. 편집국장실과 사회부·정치부·편집부·회의실 등이 있는 조선일보 본관 4층과 자유석이 있는 3층에 자리를 잡고 오전 9시50분 디지털 회의·편집국 회의부터 밤 9시 지면 최종판(52판) 편집회의까지 참석했다. 또 대학생 3명에게 일선 기자 한 명씩 각각 6일씩 동행하도록 했다고 한다. 방상훈 회장, 주필, 편집국장 등과도 인터뷰했다.

저자들은 조선일보 제작 과정을 지켜보면서 구성원들이 얼마나 뉴스의 ‘사실 확인’에 노력하는지를 알게 됐다고 했다. 사소한 팩트가 이들에게는 목숨을 거는 중대사안이 되는 것이다.

“게이트키핑(데스크)에서 지면 편집까지, 뉴스 생산과정에서 사실관계가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조선일보라고 해서 완벽하진 않고, 편향에서 자유로울 수도 없다. 하지만 주어진 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해 현실을 재구성하고 있는 건 분명했다.”

아마 저자들이 가장 놀란 것은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는 신문쟁이들의 노동강도 였을 것이다. 이 책에는 이렇게 기술돼있다.

<조선일보 기자들의 노동 강도는 살인적이다. 데스크는 오전 9시30분 팀장들이 공유한 아이템을 취합하는 것을 시작으로 오후 5시30분 초판을 발행할 때까지 지면구성안 협의·디지털회의·오전회의·오후회의 등 수차례 회의를 갖는다. 최종판이 발행되는 오후 11시까지 업무는 계속된다. 일선 기자 역시 아침 보고를 위해 새벽부터 업무를 시작했고 많게는 17시간 일했다. 일선 기자를 동행 관찰한 대학생들은 “단순한 돈벌이 수단이라고는 볼 수 없다” “개인적인 시간의 거의 없다고 느꼈다”고 했다.>

기자를 제대로 하려면 세상에 이보다 더 힘든 직업은 없다. 기자가 되는 순간 기다리는 것은 사생활과 낮밤이 없는 중노동이다. 그걸 감수하겠다는 각오나 정의감, 직업적 사명감, 명예심이 없으면 그 기자는 불행해지거나 점차 냉소적이 되고 마침내 엉터리가 된다. 단지 멋질 것 같다는 환상으로 기자 지망을 했던 이들 중에는 어려운 시험 관문을 통과해 들어와서는 1, 2년만에 “어, 이 산이 아니네”하며 보따리를 싼다.

최보식 '최보식의 언론' 대표./조선DB

저자인 윤석민 교수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본인들은 힘들지 않다고 하지만 누가 봐도 건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신문이 그렇게 만들어진다”며 “언론은 자기 몸을 갈아 넣어 사실을 지켜나가고 논조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배진아 교수도 “젊은 기자들은 업무 강도가 높은 부장들을 보고 ‘부장이 되면 저렇게 살아야 하는데 그게 맞나’라는 생각을 갖는다”며 “언론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첫 번째 과제가 노동 환경 개선이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노동 조건 개선은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고 기자 직업이 내포한 숙명과 같은 것이다. 받아들이느냐 떠나느냐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워라밸’을 생각하면, 세상은 넓고 직업은 많으니 애초에 다른 직업을 선택하는 게 현명하다.

이 책은 기자지망생들이나 현업기자들, 언론 연구자들, 욕하든 좋아하든 조선일보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들이라면 꼭 읽어볼 필요가 있다. 세상은 신문기자들을 너무 쉽게 욕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그들에게 잠깐 안쓰러운 마음도 생길지 모른다.

이 책은 교보의 언론신문방송 분야에서 1위에 올랐다. 그 상위 범주인 정치사회에서도 꽤 순위가 높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