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 의회 의사당 내 국립동상기념관에서 열린 합동 추모식에 참석했다. 작년과 올해 작고한 전·현직 의원 36명을 동료 의원들과 친지들이 모여 기리는 자리였다. 어떤 분야에서든 한 치 양보도 없이 서로를 물어 뜯는 곳이 미 의회다. 하지만 이날 행사에선 평소 같은 모습을 찾을 수 없어 생소했다. 고인의 동료·가족들은 서로 다른 당 소속 의원들을 언급하고, 그들의 생전 업적을 기억했다.
“우리는 (당파성을 떠나) 인류애를 갖고 이곳에 모였습니다.”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이날 연설에서 36명 의원 중 밥 돌 전 상원의원, 돈 영 전 하원의원, 재키 왈러스키 하원의원의 이름을 콕 집어 거론했다. 세 의원은 모두 공화당 소속이다. 그럼에도 그는 “미국 역사에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나라를 위한 여러분들의 봉사에 감사드린다”고 했다.
펠로시 의장은 지난 8월 교통사고로 사망한 왈러스키 의원에 대해 “참전용사들을 위해 해온 노력들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 민주·공화당은 왈러스키 의원 사망 직후 그의 지역구 인디애나주의 한 보훈병원 이름을 ‘재키 왈러스키 보훈병원’으로 바꾸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왈러스키 의원과 하원 윤리위 1, 2인자로 활동하면서 수시로 충돌했던 테드 더치 민주당 의원은 이날 연신 눈물을 흘렸다.
49년간 알래스카에서 하원의원으로 활동한 ‘최고령’ 영 전 의원, 35년간 상·하원의원을 지내고 공화당 대선 후보로도 출마했던 돌 전 의원은 정치 성향을 떠나 존경받는 정치인들이다. 돌 전 의원 부인인 엘리자베스 돌 전 상원의원이 이어진 연설에서 “정치 경쟁을 해야 할 때도 있지만 결국 정치는 (당이 아닌) 국민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하자 여야 의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화당 소속 케빈 매카시 하원 원내대표는 흑인 시인, 인권 운동가인 마야 앤젤루의 시를 낭송하면서 고인들을 추모했다. 1분 1초가 바쁜 유력 정치인들이었지만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된 행사 동안 모두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점점 심해지는 미 정치판의 ‘양극화’와 ‘극단주의’ 현실을 윤색하려는 것이 아니다. 미 의회가 국익이 걸린 문제에서 당을 넘어 하나로 뭉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건 서로를 인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은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행사를 주최한 전직연방의원협회 관계자는 “당파성이 심해질수록, 미국 정치에서 두 세력(민주·공화)이 마음을 맞댈 수 있는 자리가 더욱 소중해지고 있다”고 했다.
한국 국회가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다. 재난·안보 사안마저 정쟁의 도구로 삼아 상대방에 대한 공격에 몰두하는 여야 의원들이 이 연례 행사에 참석해봤으면 좋겠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양보도 칭찬도 하는 성숙함을 우리 국민에게도 보여줄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