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태국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한국 여행 금지’다. 한국을 찾는 태국인 관광객들이 입국허가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늘며 분노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셜미디어에 관련 해시태그(#)가 달린 글이 불과 며칠 사이 수백만개가 폭발적으로 게시·공유되는 이례적인 사회현상이 됐다. 총리까지 나서서 국민 달래기에 나설 정도다. 한국 여행 까짓것 안 가면 그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태국인들이 분노한 배경은 실상 따로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태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애정은 최근 몇 년 사이 빠르게 깊어졌다. 작년 태국 마히돈대가 성인 1000명을 상대로 태국 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국가를 조사한 결과 한국이 미국, 일본, 영국, 중국을 제치고 1위였다. 태국 여론 분석 업체 와이즈사이트에 따르면 10월 말부터 X(옛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 ‘한국 여행 금지’ 관련 게시·공유가 이루어진 글이 지금껏 370만개가 넘었는데, 글 작성자의 75%가 여성이고 절반 이상이 18~24세였다. 이 현상을 이끈 이들 역시 한류를 사랑하는 젊은 여성이라는 뜻이다.
사랑하고 아꼈던 존재에게 차별과 모멸을 느꼈을 때보다 더 화나는 일이 있을까. 이 업체가 ‘한국 여행 금지’ 해시태그가 달린 글의 주제를 파악한 부분이 주목할 만하다. 올라온 글 다수는 한국의 인종차별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인들이 태국인들을 후진국에서 온 이들로 취급하며 외모와 피부색 등을 이유로 차별한다는 글이 많았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 여행 중 겪은 차별, 한국에서 일하며 당한 학대나 따돌림 등 경험담이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 여행 금지’를 태국어로 X에서 검색해보면 가장 많이 공유된 글 중 하나도 ‘한국 네티즌 댓글’ 캡처다. 관련 한국 기사에 달린 한국 네티즌들 댓글을 태국 네티즌들이 번역해 퍼나른 것들이다. “(태국인) 오지 마라 누가 아쉽겠냐 ㅋㅋㅋ” “몸 파는 게 목적이라 그런 것 아니냐” 등 낯 뜨거운 댓글이 달렸다.
취재하며 접촉한 태국 젊은이들은 한류를 사랑하지만, 한국에 갈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가 많았다. 명문대 출신 변호사, 부동산 업체 대표, 스타트업 CEO 등 신원이 확실해 한국 입국이 거절될 가능성이 없는 이들도 이런 말을 하니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불법체류 가능성이 있는 이들 때문이지 너는 입국에 문제가 없다’고 하자 그제야 진짜 속내를 밝혔다. “한국에 갔다가 차별당할 것 같아 무서워요.”
‘인종차별’을 키워드로 1980~1990년대 한국 신문에 실린 기사들을 찾아봤다. 유럽 여행 중 아시안이란 이유로 욕설을 듣고 폭행당했다는 내용, LA에서 일하던 한인이 인종차별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 미국 한인 대학생들이 인종차별에 맞서는 집회를 열었다는 내용 등이 나왔다. 한국이 받았던 상처를 너무 빨리 잊은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