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윤석열 대통령 지지·응원 집회를 하고 있다./뉴스1

며칠 전 이스라엘에서 알게 된 현지인 친구에게 당혹스러운 메시지를 받았다. 그는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탄핵 반대 시위대가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를 흔드는 사진을 보내더니 대뜸 “이들이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 맞냐. 근데 왜 이스라엘 국기를 흔들고 있냐”고 물었다. 대답은 궁색했다.

공수처의 윤석열 대통령 체포 시도 전후로 외신은 관저 앞 두 집회를 집중 조명했다. 특히 성조기를 든 탄핵 반대 집회는 영미권 언론의 분석 대상이 됐다. 영국 가디언은 “성조기의 상징성은 그들이 위협받고 있다고 믿는 광범위한 문화적·정신적 질서에 대한 선언”이라고 썼다. 이어 “보수 단체는 미국이 한국을 식민 통치로부터 해방시키고, 한국 전쟁에서 한국을 지켜주었다는 사실을 자주 상기시키며 미국이 기독교적 가치를 내재한 민주주의의 신성한 수호자라는 이미지를 지지자들에게 전달한다”고 했다.

가디언의 분석대로라면, 이스라엘 국기가 등장하는 이유도 짐작이 간다. 보수 단체 집회에는 적지 않은 경우 목사가 참석하고 현장에서 찬송가를 부를 정도로 기독교인이 다수 참가하고 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은 ‘선택받은 땅’. 기독교인의 영적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여기에 ‘민주주의 수호자’ 미국과 가장 긴밀한 우방이라는 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우리 주적인 북한이 공산주의 국가고, 공산주의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며 기독교를 탄압해온 역사적 맥락을 보면, 미국과 이스라엘을 반공과 기독교의 기수(旗手)로 받아들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계엄을 옹호하는 집회에서 두 나라 국기를 흔드는 것은 다른 차원이라고 생각한다. “미국과 이스라엘도 우리와 함께 윤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선언을 하고 싶은 것일까. 그러나 이들의 바람과 달리, 국제사회는 이번 비상계엄을 민주주의에 반하는 조치라고 본다. 야당이 먼저 탄핵 남발로 국정 혼란을 초래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며칠 전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한국의 계엄 사태는 충격적이었고, 잘못됐다”고 했다. 물론 계엄을 비판한 미 정부 당국자는 그가 처음이 아니었다.

기독교 가치를 내세우며 이스라엘 국기를 흔드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이스라엘은 인구의 73%가 유대인이고, 유대교가 국가 정체성 형성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 나라다. 유대교는 기독교와 뿌리는 같지만 엄연히 다른 종교다. 기독교에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자 ‘메시아’로 여기지만, 유대교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중세부터 근대까지 서방 기독교 사회가 유대인을 핍박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스라엘 국기에 그려진 ‘다윗의 별’은 이런 유대 민족의 수난과 극복을 상징하는 문양이기도 하다.

국기는 한 국가의 권위와 이상(理想)을 표상한다. 국가의 존엄이 담긴 깃발을 다른 나라 국민이 가져다 정치적 소품으로 쓰는 것을 그 나라 국민은 어떻게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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