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1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삼성전자 갤럭시 S24 언팩 행사에 참가한 후 ‘갤럭시 S24는 아이폰을 이길까’라는 칼럼을 썼다. 당시 S24는 아이폰보다 먼저 생성형 인공지능(AI)을 스마트폰에 탑재하며 ‘세계 첫 AI 스마트폰’이라는 타이틀을 따냈었다. 현장에서는 글로벌 취재진의 진심 어린 감탄이 쏟아졌고, 기자 역시 희망에 부푼 마음으로 칼럼을 썼다.
그래서 올해 갤럭시 S25 언팩에 대한 기대는 컸다. 지난 22일 ‘진정한 AI 컴패니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S25가 베일을 벗었다. 무게가 획기적으로 줄었고, 폰 전반에 아기자기한 AI 기능이 수놓아졌다. 이 성능에 가격까지 동결했으니 판매 성적도 좋을 것 같다. 그런데도 자꾸 찜찜한 기분이 든다.
S25의 핵심 AI 기능은 우측 사이드 버튼을 길게 누르고 내장된 AI와 대화를 하며 일을 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AI는 “손흥민이 나오는 경기 스케줄을 검색해서 아빠한테 문자로 보내줘”와 같은 복잡한 일을 척척 해낸다. AI가 다수의 앱을 오가며 작동하는 것은 아이폰도 아직 내놓지 못한 기능이다. 이렇게만 보면 삼성이 올해도 애플을 이긴 것 같다. 그 AI가 구글의 제미나이라는 점만 아니라면 말이다.
S25 곳곳에 AI를 내세운 만큼, 갤럭시 스마트폰에서 구글의 존재감은 전에 없이 커졌다. 냉장고의 재료를 찍어주면 레시피를 추천해주는 것도 구글, 시청 중인 영상의 배경음악이 뭐냐고 물어보면 즉시 답해주는 것도 구글이다. 현장에서는 “내가 지금 구글의 언팩을 보고 있는 것인가”라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이는 기자가 지난해 6월 애플이 ‘애플 인텔리전스’를 공개한 세계개발자회의(WWDC) 현장에서 느낀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애플은 당시 자사 음성 AI ‘시리’와 챗GPT를 통합한다는 발표를 하면서도, 이에 할애하는 시간은 최소화했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를 현장에 초대했지만, 무대에는 올리지 않았다. 올트먼은 이날 땡볕 아래서 2시간 동안 이어진 애플의 자체 AI 기술 자랑을 다 듣고 조용히 퇴장했다. 외부 협력사가 주인공처럼 느껴지는 ‘주객전도’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S25 출시를 앞두고 삼성전자는 S25에 탑재되는 D램 초도 물량이 전부 미국 마이크론 제품이라는 소식에 곤욕을 치렀다.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장은 언팩 행사에서 “삼성전자의 메모리를 가장 많이 쓸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안개처럼 삼성전자를 뒤덮은 불안감을 전부 해소하기에는 부족했다. 삼성전자는 S25 스마트폰의 두뇌 격인 AP도 전량 퀄컴 제품을 쓰기로 했다. 행사가 끝나고 남는 건 ‘AP고 AI고, 중요한 건 다 외국산인가’라는 씁쓸한 뒷맛이었다. S25는 훌륭하고, 소비자는 만족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삼성이 애플을 이기긴 했나. 이 질문은 일단 서랍 속에 넣어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