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발에 키가 헌칠한 피터 두시는 폭스뉴스의 백악관 출입 기자다. 부친도 언론인인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귀환한 지금 워싱턴 DC에서 가장 잘나가는 언론인 중 한 명이다. 트럼프가 사랑하는 폭스뉴스니만큼 ‘피터’라 부르며 질문하게 하고 있고, 최근에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남긴 편지에 관한 특종도 했다. 트럼프 세상이 된 1월 20일 전에도 두시는 다른 의미에서 존재감이 남달랐다. 바이든 정부가 하는 일을 사사건건 트집 잡고 때로는 기괴한 질문까지 던졌다. 마이크가 꺼진 줄 안 바이든이 “멍청한 개자식”이라고 욕을 했을 정도다.
지난 2년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두시와 진검승부를 벌인 게 흑인 여성으로는 처음 백악관 대변인을 지낸 커린 잔피에어다. 두 사람은 거의 매일 충돌했다. 지난해 6월 바이든이 대선 후보 토론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 교체론이 일자 두시는 한 기사를 인용하며 “백악관분들은 정신이 나가 있는 상태인가요?”라고 물었다. 잔피에어는 “피터,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고 받아쳤다. 충돌이 반복되면서 두 사람의 질의응답 영상은 소셜미디어에서 인기 있는 밈(meme)이 됐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두시의 인사말에 커린이 “당신이 제 기분도 신경 쓰나요?”라고 유쾌하게 받아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미국이 국민은 웃었고 “어쩌면 둘이 몰래 서로를 사랑하는 사이일지도 모른다”는 농담까지 돌았다.
각자 서 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 두 사람이 바이든 정부가 끝나기 이틀 앞두고 사진을 찍었다. 그 안에는 왠지 모를 뭉클함이 있었다. 두시는 “커린이 항상 내 질문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은 나를 호명했다”며 “우리는 몇 년 동안 많은 뉴스를 만들었고, 이제 당신의 행운을 빈다”고 했다. 커린이 두시의 짓궂음을 감내한 이유가 마지막 브리핑에 있었다. “언론의 자유가 국가의 초석이며 권력자에게 질문하고 책임을 묻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안다. 브리핑룸 안의 우리가 항상 같은 생각일 수 없지만 괜찮다. 민주주의의 일부이고 그걸 함께하게 돼 영광이었다.”
임기 막판 한국의 탄핵 정국에 관한 질문에 시달리던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도 맺음말에서 “어려운 결정을 내리거나 중요한 정책적 선택을 할 때 ‘이걸 언론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 적이 몇 번인지 모른다”며 “여러분의 질문에 답하는 이 전통이 계속돼야 우리 정부가, 우리나라가, 그리고 세계가 더 좋아진다”고 했다. 정권 재창출 없이 단명(短命)한 바이든 정부는 역사 속 실패한 정부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일 오가는 치열한 문답 속 미국은 또 한 번 진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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