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프랑스 대선을 리옹(Lyon) 연수 시절 지켜봤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처음 당선된 바로 그 선거다. 당시 프랑스는 경기 침체와 실업, 테러 확산, 이민자 문제로 큰 위기였다. 집권 사회당은 그러나 이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대처 못 했다. 그렇다고 우파 공화당이 좌파 정부의 실정에 이렇다 할 대안을 내놓은 것도 아니다. ‘좌파는 무능하다’는 비난과 반대만 계속 이어가는 와중에, 공화당 대선 후보 프랑수아 피용은 가족 부정 채용 의혹 등 윤리 문제로 큰 논란을 겪고 있었다.
사회당과 공화당 모두 핵심 지지층만 바라보며 싸움을 이어가는 동안, 다수 중도층에선 기존 정치에 대한 극심한 피로감이 터져 나왔다. 좌우 정치 엘리트와 그 추종자들이 반세기 넘게 각종 감투와 이권을 둘러싼 ‘약탈적 정치’를 벌여왔고, 최대 피해자는 프랑스 국민이란 말이 나왔다. 이런 불만을 타고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이 급부상했지만, 다수 국민에게 극우는 아직 받아들이기 힘든 선택지였다.
당시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의 경제산업디지털부 장관이었던 마크롱은 이 점을 파고들었다. 그는 대선을 1년 앞둔 2016년 4월 ‘앙마르슈(En Marche!·전진)’를 출범시키며 “프랑스는 전통 정당들의 기성 질서를 파괴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진’이라는 당명은 좌도, 우도 아닌 ‘앞으로만 나아간다’는 의미를 담았다. 그의 탈(脫)이념적이고 진취적인 이미지는 이른바 ‘68세대’에 대한 반감이 누적되고 있던 젊은 층에도 크게 어필했다.
마크롱의 등장에 여권에선 ‘배신자’, 야권에선 ‘부역자’란 비난이 쏟아졌다. 39세의 어린 나이에 선출직 경험도 없다 보니 “정치 초보에게 어떻게 나라를 맡기냐”는 말도 나왔다. 마크롱은 이런 비판을 자신의 차별성 부각에 역이용했다. 좌우 대결을 시대착오적이라고 선언하고 “이념을 초월해 가장 합리적 해법을 찾겠다”고 했다. ‘좌파는 복지, 우파는 성장’이란 이분법을 깨겠다고, 반(反)유럽연합(EU)과 반세계화 흐름에 맞서 프랑스의 국제적 영향력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정치 경력이 없다는 비판엔 “기성 정치인에게 없는 비(非)당파성, 전문성, 실력을 갖췄다”고 응수했다.
역사학자이자 정치사상가인 피에르 로장발롱은 마크롱을 ‘포스트-이데올로기적 중도’라고 했다. 처음엔 누가 마크롱에게 표를 던질까 싶었지만, 최종 결과는 그의 승리였다. 침묵해 온 중도파의 정치 불신과 염증이 그만큼 강했다. 사회당과 공화당은 이후 소수당으로 몰락했고, 프랑스 정치는 중도와 극우·극좌가 이끌게 됐다. 마크롱의 프랑스가 지금 잘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국민을 핑계로 법전에 나와 있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권력 다툼을 벌이다 또 한번의 파국을 맞는 한국 정치를 보고 문득 떠오른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