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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일단락한 선거법 2심 무죄와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이 일주일 간격으로 나오며 대한민국 리더십 구도는 송두리째 뒤집혔다. 이 모든 것이 정당 간 합의나 정치인들의 협상이 아닌 판사의 판결로 이뤄졌다. 겉으로는 사법부 독립과 중립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조용한 정치인’ 같은 판사들 탓에 선고 전부터 특정 판사가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무성했다.

이달 초 미국 위스콘신주(州)의 대법관 선거에서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법관 후보들이 주 전역에서 마이크를 잡고 유세를 벌이며 낙태와 총기 규제 같은 정치 이슈를 다뤘다. 미국은 사법부의 민주적 정당성을 제고한다는 측면에서 판사들을 선거로 뽑는 주가 많다. 이들 주 대법관 후보들은 거리에서 유권자와 악수하며 홍보 전단을 돌렸다. 그야말로 ‘법복 입은 정치인’이 따로 없었다.

미국에서 정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주 판사들이 예측 가능한 정치 판결을 내놓아 논란이 되는 경우는 많았다. 정권에 의해 임명되는 연방 법원 판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2022년 트럼프가 임명한 보수 대법관 우위 구도의 대법원이 50년간 유지돼 온 낙태권 보장 판례를 뒤집자 “이건 법이 아니라 정치”라는 진보 진영 비판이 나왔다. 트럼프 역시 현재 자신의 행정명령을 뒤집는 연방 판사들이 모두 민주당 정권에서 임명된 ‘급진 좌파 미치광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겉으로는 중립인 척하지만 뒤에서는 정치적 계산을 하는 판사들과, 정면으로 정치에 뛰어들어 중립인 척하는 판사들 중 어느 쪽이 더 나은가. 투표로 판사를 뽑는 미국은 선거 때마다 국민의 심판으로 사법부를 통제할 수 있다는 측면이라도 있다. 선출된 판사가 더 책임감을 가진다는 일부 학계 분석도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 양극화 심화로 인한 사법부의 폐해는 부인할 수 없는 미국의 사법 현실이다.

하지만 판사들이 시험과 경력 요건을 통해 선발되는 한국 사법부 역시 정치적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점을 보면, 제도가 어떻든 간에 정치 양극화로 인한 ‘정치 판사’ ‘정치 판결’이 양산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은 판사들이 정치색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유권자도 이를 감안해 투표하는 구조인 만큼 정치적 판결이 제도적으로 어느 정도 용인되는 측면도 있다. 반면 법관의 중립성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한국은 판사들의 ‘은밀한’ 정치 판결 논란이 반복될 때마다 사회적 상실감과 사법부의 신뢰도 하락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판사가 정치의 마무리를 짓는 시대다. 정치가 외면한 갈등의 해답을 법원이 내려주고, 법복을 입은 이들이 현실 정치를 재단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사법이 정치의 빈자리를 메워선 안 된다. 사법이 정치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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