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샌프란시스코 시청 앞에는 확성기로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로 시끌벅적했다. 200~300명이 집결한 이 시위는 최근 미국 전역에서 확산하는 ‘반(反)트럼프’ 관련 집회는 아니었고, 공공 교육 환경을 개선해달라는 비교적 온건한 성향의 모임이었다. 우연히 인근을 함께 걷고 있던 버클리대 유학생 K는 시위대를 보자 황급히 발걸음을 돌렸다. “저들이 찍는 사진에 배경으로라도 얼굴이 남으면 내 학생 비자가 소리 소문 없이 취소될지도 모른다”는 게 이유였다.
K의 공포는 결코 유난이 아니다. 미국 국제교육자협회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지난 17일까지 사전 통보 없이 학생 비자가 취소된 사례만 1400건에 달한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500여 건으로 알려졌던 건수가 일주일 사이에 급증한 만큼, 유학생들 사이에선 ‘다음은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공포가 만연하다. 스탠퍼드에서 유학 중인 중국인 쉬모씨는 “친(親)팔레스타인 시위에 참여했던 학생만 집중적으로 단속하는 줄 알았는데, 과속 위반 벌금을 납부하지 않았거나, 주차 딱지를 제때 처리하지 못했다고 취소하는 경우도 있다”며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미국은 능력을 출신보다 우선하는 나라라는 말도 옛말이 될까. 최근 만난 한 빅테크 임원은 “채용이 된 지 얼마 안 돼 학생 비자가 취소되는 사례도 있다. 그럴 경우 우리가 아무리 채용하고 싶어도 채용이 안 된다”고 했다. 고학력 외국인이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취직을 하려면 전문직 취업 비자인 H-1B를 받는 것이 가장 보편적이다. 문제는 H-1B는 매년 4월 단 한 번 추첨을 통해 발급되고, 추첨 성공률은 지난해 16%에 불과했다. 다만 학생 비자가 있는 경우 1년 동안은 H-1B가 없어도 일단 일을 시작할 수 있고, 이듬해의 추첨에 도전해볼 수 있다. 학생 비자를 취소하는 것은 사실상 당장 고국으로 귀국하라는 추방 명령인 것이다. 현재 미국 빅테크 기업의 60% 이상이 이민자고, 그중 대다수가 미국 유학생 출신이다. 해당 임원은 “사실상 앞으로 능력 대신 출신을 중심으로 채용하라는 뜻 아니겠느냐”고 했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극단적인 정책을 바라보는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미국이 독보적 강대국으로서의 여유가 사라진 것 같다”는 탄식이 터져 나온다. 당장 중국은 5년 넘게 이어진 초강도 제재 속에서도 기술 자립에 성공했다. 그래서일까. 이 같은 조바심이 결국 기술 유출 가능성이 있는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구조적 불신으로 이어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당장 비자가 취소된 사례 중에는 중국 국적자가 다수를 차지하지만, 한국 유학생도 그 위협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보기는 어렵다. 미국은 자국의 기회를 외부 세계와 나누려는 여유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닫히는 문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이 지금 한국에 던져진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