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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전경. /뉴스1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전경. /뉴스1

시중은행들이 대출할 때 어떻게 부동산 가격 대비 대출 비율(LTV)을 책정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서로 교환한 의혹이 있고, 이것이 담합에 해당할 수 있다며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 중이다. 지난 10~13일 공정위는 신한·우리은행에 대해 세 번째 현장 조사를 벌였다.

그런데 이건 꽤 묵은 사건이다. 2년 전 국민·하나·농협·기업은행까지 6곳을 조사하기 시작했는데, 분명한 혐의가 잡히지 않아 농협·기업은행을 뺀 4곳을 또 조사했다. 하지만 작년 말 공정위 내부 의결 기관인 전원회의는 “사실관계와 법리를 다시 판단하라”며 재심사 결정을 내렸다. 공정위 내부에서도 깔끔하게 담합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려웠다는 얘기다.

그러자 공정위의 실무 부서는 2곳을 빼고 신한·우리은행을 다시 뒤졌다. 두 은행 여신기획부 직원들은 공정위 조사 때마다 외부 미팅을 줄줄이 취소하는 등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고 한다.

취재 과정에서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사건을 맡은 부서가 금융·유통 등을 담당하는 서비스카르텔조사팀이 아니라 글로벌 기업 담합을 잡아내는 국제카르텔조사과라는 것이다. 카르텔조사국 내 조사 부서 가운데 일부 부서에 일이 몰리면 다른 부서가 대신 조사를 맡기도 하는데, 국제카르텔조사과 ‘일감’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라고 한다.

글로벌 기업 담합을 추적하는 부서가 국내 은행을 2년 넘게 탈탈 털고 있다는 건 조사의 정도(正道)에서 어긋난 것이다. 행정 권력을 전문성 고려 없이 막무가내로 행사한다는 비판을 자초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글로벌 빅테크들이 국내에서 부리는 횡포는 제대로 막지 못하면서 국내 기업들만 들들 볶는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다.

실제로 공정위는 해외 기업의 부당 행위는 제대로 적발하지 못한다.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을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공정위가 해외 기업에 부과한 과징금은 2021년 2649억원에서 2023년 955억원으로 줄었다. 작년엔 1억9500만원으로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1년 전의 0.2%에 불과하다. 처리한 사건이 네덜란드 부킹닷컴의 부당 광고 딱 1건에 그쳤기 때문이다.

경쟁법에 정통한 한 외국 변호사는 “복잡한 기술 분야를 다룬 방대한 영어 문건을 소화해야 하는 데다 한국 기업들처럼 공정위의 ‘으름장’이 먹히지도 않기 때문에 법원 승소율을 높이려는 공정위가 빅테크 규제에서 발을 뺀 결과”라며 “‘빅테크 반칙’이 줄어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손쉽게 일하고 실적이 높은 것처럼 치장하기 위해 국내 기업을 때려잡는 데 에너지를 많이 쓴다는 얘기다.

지금부터라도 공정위가 달라져야 한다. 외국계 빅테크가 국내 시장을 교란하는 행태는 제대로 잡아내지 않으면서 국내 기업만 못살게 하는 ‘불공정한 공정위’라는 비판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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