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에 앉아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7일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에 앉아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로이터 연합뉴스

미신에 대한 관심은 동서고금, 지위 고하를 막론하는 것 같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미신을 믿는다”고 전 세계에 알렸다. 지난 4일 첫 의회 연설에서 상호 관세를 4월 2일에 부과하려는 이유를 설명하면서다. 원래 4월 1일로 하고 싶었는데 만우절이라 부정 탈까 봐 하루 치 관세 손해를 감수하고 2일에 한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미신을 매우 믿는 사람(I’m a very superstitious person)”이라고 했다.

트럼프가 미신을 믿는 모습은 과거에도 종종 관찰됐다. 그는 지난 대선 유세 때 맥도널드에 현장 체험을 가서는 감자튀김 옆에 있던 소금을 어깨 위로 두 번 뿌린 뒤 “액운을 쫓아내는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불운의 기운이 강한 사람이나 에너지가 낮은 사람을 피한다고 한다. 조 바이든과 맞붙은 2020년 대선에선, 2016년 대선 승리 당시 곁에 뒀던 참모들만 데리고 다닌 적도 있다.

혹시 지금까지의 폭주도 미신 때문이었나 하는 의심마저 든다. 그는 무역 적자와 마약, 불법 이민을 명분으로 ‘관세 4종 세트’를 동원해 전 세계를 협박 중이다. 그린란드와 가자 지구를 갖겠다고 떠들고 약소 우방국인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백악관에서 면박 주고 내쫓기도 했다. 한국의 대미 관세가 미국의 4배 수준이라는 근거 없는 말도 아무렇지 않게 한다. 세계 최강국 지도자가 미신을 믿는다니,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두렵기만 하다.

그러나 트럼프가 믿는 미신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트럼프의 폭주를 단순히 미치광이 행보로 치부하면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가 믿는 미신은 주술가에게 미래를 묻고 정책을 결정하는 것과는 결이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빈틈없는 성공과 철저한 자기 관리의 일환으로 미신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1기 당시 선거대책본부장이 2017년 쓴 책 ‘트럼프를 승리하게 하라(Let Trump Be Trump)’에는 관련 에피소드들이 담겨 있다. 트럼프는 대선 당일, 당선이 확정되기 전엔 경거망동하지 말라며 당선 수락 연설문이나 축하 행사를 절대 준비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또 선거 운동 기간 ‘성공의 루틴’이라며 폭스 뉴스와 월요일 아침 전화 인터뷰하는 것을 빠뜨리지 않았다.

평생 술을 한 잔도 입에 대지 않았다고 밝힌 적 있는 그는 치열한 비즈니스 환경에서 금주(禁酒)가 자신을 훨씬 더 경쟁력 있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주고받는’ 거래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하고, 나쁜 운은 피하려고 하는 성공한 사업가의 특징을 갖고 있다. 트럼프는 젤렌스키에게 “당신에겐 카드가 없다”는 말을 여섯 번 했다. 결국 젤렌스키는 “미국이 원하는 대로 하겠다”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목적 달성을 위해 완벽을 기하려는 트럼프 앞에서 한국은 어떤 카드를 내밀 수 있을까. 대통령은 공백 상태지만, 누군가는 우리만의 카드를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