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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 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의 김병주 회장은 우리나라에서 둘째로 돈 많은 인물이다. 2024년 5월, 미국 시사 주간지 포브스에 따르면, 그의 재산은 97억달러(약 14조1700억원)다. 그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1963년 경상남도 창원(진해)에서 태어났지만, 10대 때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미국 국적자가 됐다.

김 회장은 2005년 자신의 한국·미국 이름을 따 MBK를 설립했다. 크고 작은 회사들을 인수해 다시 되파는 방식으로 큰돈을 벌었다. MBK가 굴리는 자금 규모는 300억달러(약 44조원)에 이른다.

하지만 그의 명성에 금이 가고 있다. MBK가 인수한 기업들이 잇따라 경영에 실패하거나, 투자금을 회수한 뒤 회사가 사실상 껍데기만 남는 경우가 속출하면서다.

‘홈플러스’는 대표적인 사례다. MBK는 2015년 7조2000억원이라는 큰돈을 들여 홈플러스를 인수했다. 정확히 10년 뒤 홈플러스는 법원에 회생 신청을 하는 처지가 됐다. 2022년(-2601억원)과 2023년(-1994억원)에는 연속으로 영업 손실을 봤다. 온라인이 대세가 된 유통시장의 변화를 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장 홈플러스가 발행한 6000억원에 가까운 금융채권은 휴지 조각이 될 수 있는 위기에 놓였다.

MBK에 비난이 쏟아지자, 결국 김 회장은 14조원에 달하는 사재 가운데 일부를 내놓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사모 펀드 업계에서는 이에 의문을 품는 시각이 있다. 돈 앞에선 피도 눈물도 없는 사모 펀드 업계에서 사재 출연은 전례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김 회장은 내놓을 사재의 구체적인 액수나 시기, 범위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금융권에서는 홈플러스 정상화를 위해서는 약 1조7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있다. 업계에서는 김 회장이 내놓을 사재 규모에 대해 ‘3000억원 이하다’ ‘1조원이 넘는다’는 식의 추측만 난무하다.

사모 펀드 업계에서는 김 회장이 펀드 투자 약정서에 담긴 ‘손해 보전 조항(Indemnity Clause)’을 믿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 조항은 MBK 같은 펀드 운용사가 홈플러스처럼 투자한 회사의 정상화 등을 위해 희생할 경우 펀드에서 비용 일부를 보전받을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한 사모 펀드 업계 관계자는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김 회장이 사재를 흔쾌히 내놓겠다고 나서는 데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현재 MBK는 국세청의 세무조사와 금융 당국의 대대적인 검사를 받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인 김 회장을 바라보는 우리 국민의 시선은 보다 냉철하다. 되도록 빨리 출연할 사재의 규모나 범위 등을 밝혀 시장의 불안을 지울 필요가 있다. 김 회장의 사재 출연이 여론의 비난과 당국의 압박을 잠시 피하기 위한 미봉책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