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 자녀 입시에 의혹을 제기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삭제했다. ‘조만대장경’ ‘조적조’란 말에도 굴하지 않고 따박따박 페이스북 활동을 하던 그가, 후보 측 반박 한 마디에 슬그머니 글을 내리는 모습은 낯설었다. 그가 속해 있는 진영 내부 정서에 변화라도 생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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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장면은 또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자신의 퇴임 후 사저에 대한 비판이 나오자 직접 페이스북에 반박 글을 올렸는데, 여기에 일부 친여(親與) 사이트 이용자들 사이에서 “뜬금없는 노무현 팔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좀스럽다’는 말에 격분한 야당과 달리, 이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 사저’라는 언급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대중이 원하는 바를 읽어 감성을 자극하는 데는 수준급인 이 정권 사람들의 촉이 갑자기 무뎌지기라고 한 것일까.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도 페이스북에서 ‘이준석군’ 운운해 불필요한 논란을 키웠다.

현 여권과 그 지지층은 인터넷 도입 이후 20년 가까이 포털 댓글과 맘카페·동호회 게시판 여론에서 우위를 점해왔다. ‘뇌송송 구멍탁’이나 ‘사드 전자파 참외’ 같은 짧고 간결한 메시지로 대중의 눈과 귀를 장악했고, 근거 없는 억측도 ‘뇌피셜’이니 ‘합리적 의심’이니 하면서 그럴싸하게 들리도록 만드는 남다른 재주도 가졌다.

그런데 최근 이들이 조성해 놓은 인터넷 여론의 ‘텃밭’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예컨대 2년 전까지 ‘노무현 이름만 불러도 공격하는 곳’이란 평가를 받던 강성 친노 사이트 ‘MLB파크’(엠팍)에서 문 대통령의 이번 페이스북 관련 글을 검색하자 ‘(대통령은) 아직도 언론과 야당에 핍박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야당 정치인인 줄 아시나’ ‘지지자들에게 자기를 지켜 달라는 메시지’ 같은 반응이 올라왔다. 물론 엠팍의 경우 최근 조국 사태 등을 겪으며 성향이 바뀌었다는 지적이 있지만, 이보다 친여 성향이 훨씬 강한 ‘루리웹’ ‘인벤’ ‘에펨코리아’ 같은 커뮤니티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뽐뿌’에는 이런 상황 자체가 못마땅한 누군가 올려놓은, “운영자가 (보수 성향) 일베에 매수됐다”는 글이 검색됐고, “딴지 말고는 모두 벌레들한테 점령당했다”는 불만에 찬 글도 보였다. 여권 지지 성향이 가장 강한 축에 속했던 ’82쿡' ‘오늘의 유머’(오유) 같은 곳도 과거처럼 친여 일색으로 도배되지는 않았다.

‘적폐’ ‘이명박그네’ 같은 단어는 이제 이들 사이트에서조차 진부하게 받아들여진다. 지난 12일 “LH 사태로 부동산 적폐를 청산하고 사회의 공정을 바로세우는 계기로 만들자”는 문 대통령의 발언이 소개되자, “또 적폐 치트키 꺼내 들었네” 식의 반응도 나왔다. 치트키는 게임에서 쓰는 용어로, 순식간에 상황을 종료시키거나 게임을 쉽게 만드는 만능 명령어를 뜻한다. 현 집권 세력의 마법 주문인 ‘적폐’가 20~30대들이 사용하는 ‘치트키’라는 발랄한 언어 앞에 맥을 못 쓰는 상황이 된 것이다.

모든 억눌렸던 것들, 억압받은 것들은 언젠가 회귀하는 법이다. 지금 우리는 자신들은 지킬 의지도 없었던 ‘정의’ ‘공정’ ‘평등’ 같은 거창한 이념을 앞세워 상대방을 억누르고 ‘적폐’ ‘토착왜구’라고 공격했던 이들에 의해 억압됐던 목소리가 살아 돌아오는 것을 보고 있다. ‘적폐청산’ ‘검수완박’ 같은 구호 수준의 주술적 언사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고 마법의 거울도 깨지자, 집권 세력의 민낯과 무능함이 드러났다. 자신의 사저 문제와 관련해 다급한 듯 지지자들에게 띄운 대통령의 페이스북 글을 보며, 그가 스스로를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라고 생각하는지도 궁금했다. 대통령 페이스북에 달린 그 무수한 댓글들을 보면 기자만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