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 정전, 발전량 부족’(1956년 10월 조선일보) ‘서울 전역 정전, 한때 까막세상’(1963년 8월 조선일보).
1950년대까지 수력 발전에 의존한 우리나라는 만성적인 전력 부족 탓에 툭하면 정전(停電)이었다. 경제개발 계획과 함께 화력발전 위주로 전력 설비를 늘려 1964년 4월엔 광복 이후 19년간 되풀이된 제한 송전이 해제됐다. 그래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 신문은 ‘당국의 무제한 송전 단행을 비웃듯 도처에서 정전 사고가 발생했다’고 썼다. 1970년대에도 ‘더위에 정전’ ‘벼락에 정전’ ‘단비에 정전’ ‘포크레인 전주받아 정전’이 발생하며 정전은 일상이었다. 1980년대 원전 건설로 발전량이 늘었지만 마찬가지였다. 1990년엔 무더위에 냉방 사용이 급증하면서 나흘간 1500건 정전 사고가 신고됐다. 2011년 9월 늦더위에 전국적인 대정전 사태가 벌어졌다.
올여름 전력 수급도 심상치 않다. 보통 여름철 최대 전력 수요는 8월 둘째 주인데 7월 초부터 최악의 폭염이었던 2018년 기록을 갈아치웠다. 정부도 올여름 전력 예비력이 5년 만에 최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순환 단전이라는 비상조치까지 고려된다.
후진국일 때도, 개발도상국일 때도, 경제 대국이 돼서도 전력난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매년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한 탓이다. 우리나라 발전량은 1961년 이후 외환 위기가 있던 1998년과 2019~2020년 세 차례를 제외하고 매년 증가했다. 작년 발전량은 1961년보다 300배 넘게 늘었다. 공급자 입장에서 전력만큼 비경제적인 제품도 없다. 전기를 재고로 쌓아둘 수 없으니 봄·가을 발전기 절반이 놀아도 한순간 최대 전력 수요에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발전소를 지어야 한다. 그렇다고 마냥 늘릴 수도 없다. 돈도 돈이지만 지금도 발전소·송전탑 건설을 두고 전국 곳곳에서 사회적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일상화한 폭염과 탄소 중립을 위해 전력 수요는 앞으로 더 급격히 늘게 된다. 전력 수요 증가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효율을 높여 전기를 잘 쓰는 것이다. 에너지 효율화는 가장 경제적인 에너지원으로 언급된다. 에너지 효율 향상에 드는 비용은 kWh(킬로와트시)당 29원으로 태양광(126원), LNG(92원), 석탄(81원)은 물론 원전(65원)보다 싸다. 또 탄소 배출이나 폐기물 없는 가장 친환경적이다. 발전소 건설, 송·배전망 확대에 따른 주민 수용성 논란도 원천적으로 피할 수 있다.
그래서 IEA(국제에너지기구)는 에너지 효율화를 ‘첫 번째 연료(First Fuel)’라고 부른다. IEA는 “2050년 탄소 중립을 위해 에너지 효율화 개선 속도를 두 배 늘려야 한다”며 “이 경우 매년 중국의 최종 에너지 소비량과 맞먹는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 세계 가정이 매년 6500억달러(약 816조원) 에너지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10위 에너지 다소비국이다. 하지만 에너지 효율성 평가 지표인 에너지원단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33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에너지를 많이 쓰면서도 비효율적으로 소비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효율화 개선 속도도 둔화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선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해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투자와 맞먹는 돈을 쏟아붓고 있다.
1970년대 오일 쇼크는 에너지 효율화 측면에서 큰 진전을 이루는 계기가 됐다. 에너지 안보 위기, 에너지 가격 폭등, 기후 위기 속에서 에너지를 아껴 쓰고 잘 쓰는 게 더욱 중요해졌다. 이번 위기도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