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수 논설위원
'미친 집값'에 절망한 2030세대가 자산 증식 막차를 타겠다며 빚까지 내 주식 투자에 올인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동학개미 군단의 뜻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공매도 금지 등 이들의 요구를 대부분 들어주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있는 다주택자들을 부동산 투기꾼으로 간주하면서 징벌적 과세로 벌을 주고 있다. 졸지에 '공공의 적'이 된 다주택자들이 억울하다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투자와 투기는 경계가 모호하다. “내가 하면 투자, 남이 하면 투기.” 농반진반 정의가 진실에 가까울 수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과감하게 새 판별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부동산은 투기, 주식은 투자”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21대 국회 개원 연설에서 “부동산 투기를 통해선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게 하겠다”고 했다. 반면 뉴딜펀드에 대해선 “시중 유동성을 부동산 같은 비생산적인 부문에서 생산적인 부문으로 이동시킨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부동산 정책 실패를 희석하려 ‘부동산 투자=악(惡), 주식 투자=선(善)’이라는 프레임을 설정했다. 문 정부는 이 프레임하에 투자자들을 ‘선한 투자자’와 ‘나쁜 투기꾼’으로 나누고 철저히 차별하고 있다.

이 분류법에서 1등 시민은 ‘동학개미'들이다. 집값 폭등에 절망한 2030세대가 코로나 사태로 주가가 급락하자 영혼까지 끌어모아 주식 투자에 나섰다. 이들이 거대 집단으로 부상하자 그들의 목소리에 각별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 주식 투자 수익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려다 동학개미들이 반발하자 즉시 후퇴했다. 증시 버블 방지 기능이 있는 공매도 금지를 요구하자 바로 수용했다. 주식 양도 차익에 세금을 물리는 대주주 요건을 ’10억원’에서 ‘3억원’으로 내리겠다고 했다가 동학개미들이 반발하자 ‘가족 합산’에서 ‘개인 보유분’으로 완화하겠다고 달래고 있다.

2등 시민은 사모펀드 투자자들이다. 문 정부 들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사모펀드 중 일부에서 엉터리 부실 투자로 지급 불능 사태가 생기자 정부는 재빨리 은행·증권사 팔을 비틀어 원금을 보전해주었다. “투자자 책임 원칙을 훼손한다”는 지적은 무시됐다. 항간에선 ‘펀드 게이트’ 확산을 막기 위한 정치적 계산 때문이란 해석이 뒤따랐다. ‘초(超)엘리트’ 조국 전 법무장관이 사모펀드에 투자했고, 이 펀드가 문 정부 관련 공공사업에 올인했다는 의혹, 대통령 사위에게 일자리를 제공한 민주당 의원이 사모펀드 돈으로 항공사를 창업했고, 청와대 행정관이 이 펀드의 주요 간부였다는 사실 등이 그런 해석의 근거로 제시됐다.

반면 투자 세계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예금·보험 투자자, 1주택 소유자들은 3등 시민으로 취급된다. 은행 1년 정기예금 이율이 0%대로 떨어져도, 퇴직연금 수익률이 1%대로 추락해도 금융 당국은 그냥 내버려둔다. 1주택자에겐 재산세 폭탄을 안기면서 대출 금지 등 이중·삼중의 규제를 가해 추가 주택 투자는 꿈도 못 꾸게 한다.

다주택자들은 불가촉천민으로 다뤄지고 있다. 문 정부 첫 부동산 정책을 설계한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임대주택 공급자’로 이들의 역할을 인정해 주었다. 하지만 부동산 정책 실패로 ‘미친 집값’이 현실화되자 안면몰수하고 ‘공공의 적’으로 매도했다. 12% 주택 취득세, 6% 종부세 등 황당한 수준의 징벌적 과세로 벌을 주고 있다.

문 정부의 투자·투기 분류와 투자자 차별 대우가 투자 활성화 효과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정반대다. 부동산 시장은 죽었고, 주식 투자도 7월 이후엔 국내 투자보다 해외 투자가 더 활기를 띠고 있다. 문 정부는 불씨를 살리고자 뉴딜펀드로 ‘신흥 투자자’를 양성하려 한다. 손실이 나면 세금으로 메워준다는 약속까지 내걸었다. 외국 투자 은행이 “한국에선 정부가 증시 버블을 조장한다”고 비판하는 리포트를 냈다. 개인의 투자 활동에 정부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 선악을 판별하는 것은 시장 원리와 거리가 멀다. 정부의 어쭙잖은 심판자 역할은 투자 생태계를 망칠 뿐이다. ‘전세 대란’ ‘영끌 빚투’ 같은 부작용이 그 증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