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네이버의 전신인 NHN은 코스닥위원회에 상장 심사를 신청했다. 언론에선 “야후 같은 외국 기업에 종속되지 않으려면 한국 인터넷 기업도 상장을 통해 성장해야 한다”고 썼다. 원활하진 않았다. 창업자인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삼성SDS에 다닐 때 회사를 만들다 보니 삼성SDS가 주식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삼성이 이 주식을 상장 직전 팔았다는 점 등이 문제였다. 우여곡절 끝에 상장한 네이버의 당시 기업가치는 3270억원이었다. 18년 뒤인 현재 네이버 기업가치는 140배인 46조원이다. 야후는 통신 회사 버라이즌에 인수됐고 존재감도 없다. 네이버는 뉴스를 비롯한 국내 검색 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다.
한국은 구글·페이스북 등 미국 기업이 휩쓰는 세계 인터넷 시장에서 ‘국적 기업’을 보유한 몇 안 되는 나라다. 카카오도 이런 기업이다. 메신저 시장에서 카카오톡 점유율은 압도적인 1위다. 안 쓰는 한국인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금융, 택시 호출 등 다른 분야에서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음식 배달 시장에서 60%를 장악한 배달의민족(배민), 내비게이션 시장 점유율 55%인 T맵도 국내 시장에서 확고한 지위를 점유하고 있다.
그런데 독점에는 책임이 따른다. 벤처 기업이 거래 회사에 하는 “술 먹자”라는 말은 정말 “같이 술 먹자”는 뜻이지만, 독점 기업이 하는 “술 먹자”는 말은 “술 사라”는 갑질이다. “납품가 조금 낮출 수 있나”라는 말을 독점 기업이 하면 시장 지위 남용이다. 견제도 많다. 정부는 낮은 순위 인터넷몰끼리 합병할 때는 별 말도 안 하다가 네이버가 쇼핑몰 사업에 진출하면 ‘지배적 사업자’라는 딱지를 붙인다. 배달의민족이 외국 회사와 합병하려 하자, 여당이 갑자기 “합병 제대로 심사하라”고 개입한다.
한국 인터넷 역사상 독점 탓에 생긴 가장 큰 일은 ‘드루킹 사건’이다. 필명이 드루킹인 김동원씨가 대통령 선거 때 네이버의 댓글 추천을 조작했다. 네이버 서비스가 기사를 클릭하면 해당 언론사 홈페이지로 가지 않고 네이버 안에서 주로 보게 하는 방식이다 보니, 이용자가 네이버 클릭 상위 기사만 본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해외 상황도 비슷하다. 미국 인터넷 공간에서는 공화당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자가 토론은 하지 않고 자기주장만 쏟아낸다. 유럽에서는 5G(5세대 이동통신)가 코로나를 전파한다는 몰상식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졌고, 실제로 군중이 5G 시설을 파괴하는 일까지 생겼다.
이 같은 인터넷 독점에 대해 최근 각국 정부가 칼을 빼기 시작했다. 미국 법무부는 “인터넷을 독점한 문지기가 됐다”며 구글을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제소했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 전부터 미국 인터넷 기업이 허위 콘텐츠에 대해 갖고 있던 면책권을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중국 정부도 알리바바, 텐센트 등 인터넷 플랫폼의 독점 거래를 규제하는 가이드라인 초안을 발표했다.
한국 정부가 아직 이렇게까지 움직이지는 않지만, 기업은 미리 뭔가를 하려고 한다. 문제는 근본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그 예가 얼마 전에 일어났다. 네이버가 여론 조작의 타깃이 될 수 있다고 보고 분야별 많이 본 기사 순위를 없앴다. 그런데 기사를 클릭하면 네이버 안에서만 움직이게 하는 것은 과거처럼 똑같이 놔뒀다. 조작의 위험은 아직도 남아 있다.
미국이 세계 경제 1위를 놓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중 하나는 자유를 위협하는 독점 기업을 해체해 건강함을 유지한 것이다. 록펠러의 스탠더드오일은 회사 34개로, 아메리칸토바코는 회사 16개로, 방송사 NBC는 2사로, 통신사 AT&T는 8사로 강제 분할됐다. 한국의 독점 인터넷 기업도 자본주의 역사에 관심을 가질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