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연일 ‘다주택자 양도세 감면’을 주장하고 있다. 청와대는 정책실장, 정무수석, 국민소통수석이 차례로 나서서 반대하고 총리와 경제 부총리까지 “안 된다”고 못 박았다. 하지만 이 후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안 되면 선거 후에 하겠다”고 한발 물러서는 듯 하더니 며칠 뒤 “새 대통령이 뽑힌 후까지 미룰 게 아니다”라고 다시 맞섰다. 그러더니 하루 만에 “(선거가) 두 달여밖에 남지 않았으니 그때 해도 늦지 않는다”고 또 물러섰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말이 자주 바뀐다.
순수한 부동산 정책 차원이라면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다. 서울 일부 지역 아파트값이 1억원씩 떨어지는 등 전국 집값이 진정 국면에 들어선 데다 선거가 얼마 안 남았다. 새 부동산 정책은 다음 정부가 하면 된다. 그런데도 이 후보가 다주택자 감세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들 숫자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현재 전국의 다주택자는 약 230만명에 달한다. 가족 수까지 합하면 관련 유권자가 600만명을 넘는다. 반(反)민주당 성향이 강한 다주택자들을 끌어오면 득표 효과가 배가된다. 농구에서 공격하는 상대방의 공을 가로채서 역공에 성공하면 2골이 아니라 4골 이상을 얻는 것과 같은 효과다. 그래서 이 후보는 그들을 향한 유혹의 노래를 멈추기 힘들 것이다.
종부세 개편안도 꺼냈다. 이 역시 적(敵)의 안방에서 표를 빼앗아 오겠다는 것이다. 중산층을 겨냥한 1주택자 보유세 경감안은 이미 정부를 설득해 선거가 있는 3월에 발표한다고 한다. 5년 내내 세금에 시달려온 1주택자의 표심까지 흔들어 놓겠다는 것이다.
원래 이 후보는 부동산세에 관한 한 비둘기파가 아니었다. 오히려 문 정부보다 강력한 토지 공개념을 주장했다. 몇 년 전 그는 “부동산 불로소득 공화국”이란 용어를 쓰면서 그 해법으로 “부동산으로 생기는 불로소득을 100% 환수하면 된다”고 했다.
그랬던 그가 대선 후보가 되자마자 주택 보유자들을 세금 고통에서 해방시켜줄 백기사가 된 것처럼 “감세”를 외친다. “국민 상식으로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 (세금) 개선이 필요하다” “국민 뜻과 시장을 존중해 바로바로 시정해나가겠다”고도 했다. 다주택자들을 “도둑놈들” “여기가 북한이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때려잡아야 한다”고 했던 문 정부의 대척점에 있는 시장경제론자로 변신한 듯했다.
그런데 같은 날 이 후보는 부동산개혁위원회 출범식에서 “부동산 불로소득 공화국 혁파”를 다시 말했다. “국민이 반대하면 안 하겠다”던 국토보유세도 이름을 토지이익배당금제로 바꿔 다시 추진하겠다고 했다. 부동산 보유자들에게서 세금을 탈탈 털어 전 국민에게 나눠주겠다는 것이다. 이름만 듣기 좋게 바꾸면 국민들 생각도 달라질 것이라고 믿는 모양이다.
불로소득 환수는 19세기 ‘모든 지대(地代)의 환수’를 주장했던 헨리 조지를 신봉하는 민주당 의원들의 애창곡이었다. 문 대통령도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세제 개혁”을 부동산 정책의 근간으로 삼았다. 이 후보의 불로소득 환수론은 그 연장선에 있다. 이 후보는 한술 더 떠 “부동산 실효세율을 높이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문 정부보다 세금을 더 많이 걷겠다는 것이다. 이 후보가 아무리 현란하게 감세와 시장 존중, 국민 뜻을 얘기해도 선거용일 뿐, 그가 가려는 종착점은 위력이 훨씬 강한 ‘부동산 세금 폭탄’일 가능성이 크다. 세금으로 내 편, 네 편 가르는 민주당의 ‘부동산 정치’는 대선 후에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