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만km 대 3000만km 대 1억km
한국, 미국, 중국의 자율주 행 실력을 상징하는 수치다. 국내 자율 주행 1위 스타트업 오토노머스에이투지의 도심 자율 주행 누적 거리는 50만km다. 미국 웨이보의 로보택시는 3000만km. 그것도 사람이 타지 않은 완전 자율 주행 기준이다. 이런 수치도 중국 앞에선 새발의 피다. 중국 바이두의 누적 운행 거리는 1억km가 넘는다. 중국엔 이런 자율 주행 회사가 60개 더 있다고 한다. 중국 우한 등에선 출퇴근 시간에 사람이 모는 자동차와 뒤섞이면서도 사고 없이 능숙하게 나아가는 자율 주행 행렬이 이어진다. 올 초부터 중국의 자율 주행 실력에 미국마저 기겁하고 있다. 자율 주행은 미래차 경쟁에서 궁극의 승자가 될 것이다. 그런데 자율 주행은 자동차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다. 러-우크라이나 전쟁이 인류 전쟁사에서 최초의 드론 전쟁으로 기록되겠지만, 이후엔 자율 주행으로 무장한 로봇들의 전쟁 시대가 열릴 것이다. 그런 첨단 경쟁에서 우리의 성적표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현대차와 기아는 자율 주행 누적 운행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 다만 최근 이 업체의 최고위 경영진에게 이런 얘길 들었다. “미국 자율 주행이 운전면허증 1년 차라면 중국은 10년 차 수준이다. 그 격차는 급속히 더 벌어져 갈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는 뭘 해야 하냐는 두려움이 든다.”
2015년부터 서울과 제주도 등에서 자율 주행차 437대가 운행했는데 안전 등을 이유로 반드시 사람이 타야 가능했다. 올 들어 겨우 ‘운전자 없는’ 자율 주행이 가능하게 됐다. 자율 주행이 급성장해야 할 가장 중요한 10년 시기가 이런 각종 규제에 막혀 있었던 셈이다. 자율 주행만 그랬을까.
산업혁명, 정보혁명을 능가하는 AI혁명 시대로 가고 있는 지금, 글로벌 최고 기업과 국가들은 ‘규제 감축’을 넘어 ‘규제 없음’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장애물이 잔뜩 놓인 도로에 차들을 달리게 하는 꼴이다.
최근 한 모임에서 “한국에서 인구 출생률은 바닥을 뚫고 내려가는데 천정부지로 치솟는 출생률이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바로 규제 출생률이었다. ‘경제 사령탑’ 출신의 A는 “새 규제를 만들려면 다른 규제를 없애도록 하는 규제 총량제까지 만들어봤지만 무용지물”이라며 “여기엔 국회의원들의 입법 규제가 빠져 있는 데다 규제를 세는 기준도 모호해 실효가 적다”고 한탄했다. 과연 그럴까. 따져봤다.
우리 정부 규제정보포털에 집계된 ‘행정규제’ 수는 1만5000여 건. 그런데 이 수치를 통시적으로 추적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1997년부터 법으로 등록 규제 현황을 공개해왔는데 2015년 등록 단위를 규제사무에서 규제조문으로 변경해버렸다. 동일 잣대로 모니터링이 어려워진 것이다. 최근 AI로 집계해보니 우리나라 규제 수는 8만8003건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여기에도 포함 안 되는 국회의 입법 규제는 또 어떤가. 21대 국회 통과 법안 2900여 건 중 규제 법안은 1973건(69%), 지원 법안 890건(31%)이다.
실제 분석하다 보면 도대체 규제 법령인지 지원 법령인지 애매모호한 것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규제 감축을 피하려는 꼼수로도 보인다.
한국은 규제 포퓰리즘 국가다. 일단 과도할 수준의 규제부터 내놓고 당사자들이 애걸복걸하면 ‘깎아주는’ 방식이다. 이러고도 미래 경쟁에서 살아남는다면 그게 또 다른 ‘기적’이라 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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