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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이상 갈고닦은 장인들의 ‘감(感)’이 인공지능(AI)의 ‘판단력’으로 탄생하고 있었다. 5년 전 8월 포항의 포스코 2열연공장을 찾았을 때 받은 충격이었다. 방문 한 달 전 세계경제포럼(WEF)은 이 공장을 미래를 이끌 혁신 공장이란 뜻의 ‘등대 공장’으로 뽑았다. 고로(高爐)에서 녹인 쇳물이 두께 25㎝, 길이 7~8m 슬래브(철강 반제품)로 만들어진 뒤 이곳으로 와 철판이 되고 있었다. 승용차를 연간 500만대 만들 물량이다. 이 공장을 움직이는 건 2층 통합운전실의 12명이 전부. 예전엔 슬래브 한 개에 50여 명이 붙어 산소량·온도 등을 일일이 입력해 작업했지만 AI가 대신하고 있었다.

섭씨 1500도가 넘는 고로 내부는 어떤 센서로도 측정할 수 없어 오로지 장인의 감에 의존해왔다. 철광석이 브라질산인지 호주산인지, 야적장에서 비 맞은 건지, 땡볕에 마른 건지에 따라 고로의 온도, 산소나 재료의 추가 투입량이 모두 달라야 최고 효율을 낼 수 있는데, 이를 결정하는 게 현장에서 수십 년 땀을 흘린 장인의 경험치, 바로 암묵지였다. 이걸 AI 기술자들이 장인들과 함께 연구하며 데이터로 만들었다. 당시 고로에서 하루에 수집하는 데이터만 2000만개. 이런 데이터를 AI에 가르쳐 공장을 혁신하자 모든 숫자가 달라졌다. 생산 계획 수립은 12시간에서 1시간으로 줄었고, 용광로에 똑같은 코크스와 유연탄 등을 넣는데도 하루 생산량은 240t 늘었다. 공장장은 “이것은 자동화가 아닌 지능화”라 했는데, 기자의 눈에는 ‘마술’이었다. 지금 이런 마술은 더욱 정교해지고 효율적으로 진화 중이라고 한다.

2022년 등대공장으로 뽑힌 또 하나의 현장이 경남 창원에 있다. LG 스마트파크. 포화 상태 레드오션인 생활가전 사업에서 세계 1위를 3년째 지키는 비결이다. 이곳 역시 핵심은 60년 이상의 제조 노하우에 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5G 통신 등 첨단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것이다. 2017년부터 본격 시작됐다. 우선 디지털 공간에 현실과 동일한 가상 공간의 공장을 만들었다. LG 야구단 트윈스가 아니라 ‘디지털 트윈’이다 여기서 시뮬레이션으로 정확히 예측한다. 그 덕분에 라인 1개에서 냉장고 58종을 동시 생산할 수 있다. 30초마다 공장 안 데이터를 분석한 AI가 ‘10분 뒤 생산 라인’을 예측해 자재를 적시 공급하고 불량도 방지한다. 그 결과 시간당 생산 대수는 20% 늘었고, 자재 공급 시간과 불량률은 각각 25%, 30% 줄었다.

울산에 가면 등대공장 후보가 또 하나 있다. HD현대의 조선소다. 2030년까지 미래 첨단 조선소(Future Of Shipyard)로 변신이 목표다. 조선소 야드 현황을 실시간 파악해 인력과 자재를 공급하는 논리적 자동화와 첨단 로봇을 활용해 작업자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물리적 자동화를 끝낸다는 것이다. 이러면 건조 기간이 30% 이상 단축된다.

한국은 제조업의 국가 GDP 기여율이 30%가 넘는다. 중국 빼고 이런 나라는 드물다. 제조업 생산량은 중국, 미국, 일본, 독일 다음의 세계 5위다. ‘갈수록 쇠락하는’ 한국 경제는 제조업 없이 부흥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인 인건비, 경쟁국 대비 최악인 각종 규제와 강성 노조… 어느 하나 실마리가 안 보인다. 그래도 곳곳에서 돌파구를 만들고 있다. 정말 다사다난했던 올 한 해를 접는 세밑. 그래도 우리는 나아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이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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