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유진 파마 시카고대 교수가 “10년 안에 비트코인 가치가 0원이 될 가능성이 거의 100%”라고 했지만, 국제 정세, 글로벌 금융시장 판세를 보면 이 예측은 틀릴 가능성이 커 보인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코인 대통령’을 자처하고, 비트코인을 국가 전략 자산으로 삼겠다면서 하나둘 실행에 나서고 있다. 트럼프는 중앙은행 발행 가상 화폐를 키우려 한 바이든 정부 정책까지 폐기하고 비트코인을 가상 화폐 생태계의 중심축으로 세우려 한다. 왜 그럴까. 비트코인을 흔들리는 달러 패권을 지키기 위한 구원투수로 활용할 의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해석을 뒷받침할 근거는 많이 있다.
우선 미국은 가상 화폐를 사그라드는 달러 수요를 재창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 한다. 1970년대 금본위제 폐기로 위기에 몰린 달러 기축통화 지위를 살리기 위해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손을 잡고 모든 원유 거래는 달러로 결제하는 ‘페트로 달러’ 시스템을 구축했다. 여기에 은행 간 달러 송금망 ‘스위프트(SWIFT) 시스템’까지 만들어 달러 기축통화 체계를 공고히 했다. 그런데 중국의 부상으로 모든 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중국, 러시아, 브라질이 주축인 브릭스 국가들은 무역 거래를 달러 대신 비트코인 같은 가상 화폐로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최근 사우디와 미국 간 페트로 달러 비밀 협정의 50년 기한이 끝났다는 뉴스도 나왔다. 원유 거래를 위안화나 비트코인으로 결제할 길이 열린 셈이다. 더 나쁜 변수는 미 국채 최대 보유국 중국이 미 국채를 계속 팔고 있다는 것이다. 미 국채 수요가 줄면 매년 1조8000억달러에 이르는 재정 적자를 메울 길이 없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달러와 코인 가치를 일대일로 고정하는 스테이블 코인이 미 국채의 새 수요처로 부상했다. 스테이블 코인 기업들은 코인 발행량이 늘어나면 달러 자산, 즉 미 국채를 더 사야 한다. 트럼프는 그동안 스테이블 코인의 발목을 잡아온 규제, 각종 소송을 일거에 정리해 이들의 운신 폭을 넓혀주려 한다.
비트코인의 또 다른 용도는 미국 국가 부채 해결사 역할이다. 미국이 국가 전략 자산으로 비축한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하면 35조달러에 이르는 미국의 국가 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히든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 문제는 개당 10만달러에 이르는 비트코인 매입 자금을 어디서 구할 것인가이다. 유력한 해법 중 하나는 미 정부가 갖고 있는 금 8000t에 대한 가치 재평가이다. 1970년대 가격으로 평가된 보유금을 현재 가치로 재평가하면 7500억달러가량 평가익이 생기고, 이 자금으로 비트코인을 매입할 수 있다. 트럼프가 구상 중인 국부 펀드도 비트코인 매수 자금줄 역할을 할 수 있다. ‘돈나무 언니’로 유명한 캐시 우드는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국부 펀드들의 투자로 인해 2030년까지 비트코인 가격이 150만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미국이 비트코인에 대한 통제력을 갖고자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중국의 금융 굴기를 막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중국은 비트코인이 부자들의 자산 해외 도피 수단으로 활용되자 비트코인 채굴 및 거래를 전면 금지했다. 하지만 미국의 의도대로 글로벌 비트코인 생태계가 더 커지면 중국의 자본 통제가 더 어려워지고, 위안화 국제화도 멀어진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글로벌 패권국이 된 미국은 팍스 아메리카에 대한 도전이 있을 때마다, 게임 규칙을 바꿔 판을 뒤집는 식으로 헤게모니를 유지해왔다. 금본위제 폐지, 페트로 달러 시스템에 이어 이번엔 가상 화폐 생태계를 장악해 달러 패권을 유지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달러 패권에 대한 저항으로 탈(脫)중앙 세계 화폐를 꿈꾸며 비트코인을 만든 나카모토 사토시가 오늘의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