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3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3일 국회 보고에서 “북한 비핵화의 큰 그림을 위해 한미 연합 훈련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정원은 한미가 연합 훈련을 중단하면 ‘북이 남북 관계에 상응 조치를 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2일엔 통일부도 “한미 훈련이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는 계기가 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북 김여정이 1일 ‘훈련을 없애라’고 하자마자 국정원과 통일부가 앞다퉈 ‘그러겠다’고 하는 모습이다. 또 무슨 남북 이벤트를 준비하는 듯하다.

이미 한미 훈련은 ‘컴퓨터 키보드 게임’으로 전락했다. 훈련이라고 할 수도 없다. 연대급 이상 병력이 참가하는 한미 기동 훈련은 3년 넘게 실종된 상태다. 전 주한 미군 사령관이 ‘키보드 훈련’만 하면 “실전에서 혼비백산한다”고 했다. 혼비백산이 아니라 붕괴할 것이다. 그래서 미군은 ‘훈련 없이 실전에 투입할 수 없다’는 분명한 원칙을 갖고 있다. 미 국방부는 “연합 훈련은 동맹의 준비 태세를 보장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이달 예정된 훈련이 취소되면 한미 동맹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다. 북의 노림수 중 하나다.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라는 것은 이미 허위로 판명 났다. 진짜 핵 시설과 핵폭탄은 지키면서 필요 없게 된 일부 핵 시설을 내주는 대가로 대북 제재를 해제시키려 한 것이다. 북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핵과 탄도미사일을 증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훈련을 북과 협상하는 카드로 쓴다면 북의 근본적 전략 전환이 전제돼야 한다. 핵 시설과 핵폭탄 전체를 신고하고 폐기하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남북 정상회담과 같은 정치 이벤트를 위해 한미 훈련을 포기하는 것은 정치를 위해 국방을 희생하는 것이다.

한미 훈련의 정치 카드화는 트럼프가 느닷없이, 즉흥적으로 결정한 것이다. 북한 비핵화 사기극이 드러난 뒤에도 그것이 정상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상화되고 있다. 김정은은 앉아서 한미 훈련을 없애고 한미 동맹의 억지력을 껍데기로 만드는 소득을 얻었다. 다음 정부는 누가 되든 국방과 한미 훈련을 정치에서 분리해 정상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