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여성 중사가 남성 상사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는 신고를 한 후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중사의 빈소가 대전 국군대전병원에 마련됐다. /연합뉴스

성추행당한 해군 중사가 12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공군 중사 사망 석 달도 안 돼 똑같은 비극이 해군에서 되풀이됐다. 피해자는 지난 5월 인천 인근 섬 부대에서 상사와 식사 중 성추행을 당했다. 8월 정식 신고할 때까지 70일 넘게 가해자와 분리되지 않은 채 같은 섬에서 근무했다. 5월 피해 사실을 처음 보고받은 주임 상사는 가해자에게 ‘구두 경고’만 했다고 한다. 군은 정식 신고가 늦어진 이유를 “피해자가 비공개를 원해서”라고 했다. 그런데 그사이 가해자가 ‘사과’ 명목으로 피해자를 불러 오히려 술을 따르게 하는 등 2차 가해가 있었다고 한다. 사건 무마, 늑장 분리, 2차 가해까지 공군 비극의 복사판이다.

해군 성추행은 공군 사망 사건 5일 만에 벌어졌다. 6월 공군 사건이 공개되자 공군 총장이 경질되고 국방부는 전군에 성폭력 특별 신고 기간을 운영하는 등 호들갑을 떨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공군 추모소를 찾아 “국가가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 “반드시 폐습을 바로잡겠다”고 했다. 바로 그 무렵 해군 중사는 2차 피해를 봤다. 구속된 국방부 직속 육군 장성이 군무원을 성추행한 것도 같은 시기다. 군 기강이 총체적으로 붕괴했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해군 사건에 “격노했다”고 청와대가 전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사과는 국군 통수권자가 아니라 국방부 장관이 했다. 서욱 장관은 “있어선 안 될 일이 발생해 송구하다”고 했다. 서 장관의 대국민 사과는 취임 11개월 만에 일곱 번째다. 역대 최다 기록일 것이다. 서해 공무원 피살을 시작으로 작전 실패, 경계 실패, 배식 실패 등 온갖 군기 문란 때문이었다. 청해부대원의 90%가 코로나에 걸려 배를 버렸을 땐 “성공리에 임무를 했다”고 했다. 이번에도 뻔한 사과와 궤변으로 사건을 뭉개며 자리를 보전할 건가.

지금 한국군은 적(敵)이 사라진 것으로 착각한 군대, 그래서 훈련 안 하는 군대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군대 기본인 경계 실패는 셀 수도 없고, 장교들은 적이 아니라 ‘민원’과 싸우며 병사들 눈치를 본다. 지난 4년 동안 망가진 기관이 한두 곳이 아니지만 가장 심각한 곳을 꼽으라면 단연 국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