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코로나 위기를 어느 선진국보다 안정적으로 극복하고 있다. 백신 접종도 목표에 다가가고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2일 수도권 거리 두기를 4단계로 올리면서 “짧고 굵게 끝내겠다”고 했다. 당시 하루 확진자는 1100명이었다. 지금은 그때의 두 배 수준이다. 짧고 굵게가 아니라 ‘굵고 한없이 길게’ 가는 것 아니냐고 국민들이 걱정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안정적 극복’이라 한다. 대통령과 국민의 인식이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 있나.
문 대통령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가석방에 대해 “반도체와 백신 분야에서 역할을 기대하며 가석방을 요구하는 국민도 많다”고 했다. “국익을 위한 선택으로 받아들여 달라”고도 했다. 이 부회장과 삼성이 국제적 영향력을 발휘해 백신 확보에 나서달라고 사실상 주문한 것이다. 정부의 백신 확보가 벽에 부딪혔다는 걸 실토한 것이나 다름없다. 잘못된 판단과 무능력으로 백신 조달에 실패해놓고 이제 와서 민간 기업에 손을 벌린다. 백신 구매에 성공하면 이 부회장을 사면해주겠다는 압박으로도 들린다.
정부가 다른 선진국처럼 미리미리 백신을 확보했더라면 이런 곤경에 처하진 않았을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이 초기 백신 확보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결과가 최근 비참할 정도로 뚜렷해졌다”고 지적했다. 다른 선진국은 부스터샷까지 확보했다는 보도가 잇따르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세계적으로 백신 생산 부족과 공급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큰 문제”라고 했다. 다른 나라도 다 겪는 문제이지 우리만 특별한 게 아닌 것처럼 말한 것이다.
우리가 영국·미국 등보다 확진자가 많지 않은 것은 엄격한 거리 두기 덕분이다. 온 국민이 희생하고 협조한 결과다. 3명 이상 모이지 말라는 극단적 거리 두기로 자영업자들은 벼랑 끝에 몰려 있다. 그런데도 잘못에 대한 사과는 없이 말이 안 되는 자화자찬을 국민이 지칠 정도로 되풀이하고 있다. 사실이 아닌 것도 자꾸 말하면 사실로 믿게 된다는 전체주의 국가의 홍보술을 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