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가 TV조선과 조선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 복수의 언론사 기자들, ‘조국흑서’ 저자인 김경율 회계사, 민변 출신 변호사 등에 대해 무더기 통신 자료 조회를 한 사실이 잇따라 드러났다. 공수처가 수사권을 이용해 자신에 비판적 보도를 한 언론사와 민간인을 사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커질 수밖에 없다. 통신 조회를 하면 통화 당사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등이 수사기관에 넘어간다. 범죄 혐의도 없는데 개인 정보가 고스란히 노출되는 것이다. 더구나 이들은 공수처 수사 대상도 아니다. 한마디로 불법적 뒷조사다.
TV조선은 지난 4월 공수처가 김학의 불법 출금 사건 무마 혐의를 받던 이성윤 서울고검장을 관용차에 태우고 들어간 ‘황제 조사’ 장면을 보도했다. 두 달 뒤 공수처는 TV조선 사회부장과 법조팀 기자 등 6명에 대해 통신 조회를 했다. 8~10월엔 문화일보 기자 3명과 대장동 의혹을 파헤친 김 회계사 등에 대해 같은 조치를 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연합뉴스 등 다른 언론사 기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언론과 민간인에 대해 저인망식 통신 조회를 한 것은 보복의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수원지검 수사팀은 “수사권을 이용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범죄”라고 했다.
그런데 민주당은 공수처의 언론 사찰 의혹에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공수처는 야당의 반대를 뿌리치고 청와대와 여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만든 수사기관이다. 수사 10건 중 4건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 대한 수사여서 ‘윤석열 전담 수사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공수처는 여당 대표가 윤 후보 관련 ‘고발 사주’ 수사를 촉구하면 어김없이 체포·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공수처 차장은 여당 의원과 접촉했다는 의혹으로 검찰에 수사 의뢰됐다.
민주당은 작년 검찰의 ‘재판부 성향 분석 문건’이 나오자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이자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 사건”이라고 비난했다. 신문 기사나 인터넷 검색으로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정보였지만 윤석열 검찰의 ‘재판부 사찰’로 몰아갔다. 이번 공수처의 기자 통신 조회는 범죄 혐의가 없을 뿐더러 공수처의 수사 대상도 아닌 언론·민간인에 대해 수사권을 사용했다. 민주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인데도 여당은 논평 한마디 없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민주화 운동권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