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기 요금을 “내년 1분기 중엔 동결하겠다”고 밝힌 지 일주일 만에 ‘내년 4월 이후 10.6% 인상’ 계획을 발표했다. 내년 3월 대선 이후로 인상 시기를 미룬 것이다. 애초 한전이 요금 인상을 요청했을 때 정부가 ‘불허’의 이유로 내세운 것이 코로나와 생활물가 상승이었다. 선거만 끝나면 갑자기 코로나가 진정되고 다른 물가가 안정되기라도 한다는 건가.

한국전력이 2022년 1분기 전기요금 인상을 유보한다고 발표했다. 소비자 물가가 치솟는 상황에서 전기료까지 오르면 국민 생활에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정부가 판단해 한전에 인상 유보를 통보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내년 1분기 연료비 조정 요금은 현재와 같은 ㎾h당 0원을 유지하게 된다. 사진은 20일 오전 서울시내 오피스텔에 설치된 전기 계량기의 모습. 2021.12.20. /뉴시스

문재인 정부는 국민 부담을 덜어주겠다면서 지난 4년여 동안 전기 요금을 계속 동결해왔다. 반면 ‘탈원전’한다면서 값싸고 질 좋은 전기를 생산하는 원전의 가동률을 떨어뜨린 데다 최근 들어 유가와 LNG 가격이 오르면서 한전은 올 한 해에만 4조여원의 적자를 냈다. 내년 적자는 6조원대에 달할 전망이다. 요금 인상을 계속 미룰 경우 한전 주주로부터 손해배상 요구까지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결국 정부는 ‘1분기 동결, 대선 이후 10%대 인상’이라는 꼼수를 들고나왔다. 전기 요금이 두 자릿수로 인상되는 것은 1981년 이후 41년 만의 일이다. 도시가스 요금도 대선 후 16.2% 오른다. 불리한 것은 다 선거 뒤로 미루겠다는 것이다.

전기 요금 두 자릿수 인상의 직접적 이유는 연료비 급등이지만 근저에는 ‘탈원전’이 있다. 대통령 단 한 명의 아집으로 2016년 79.7%에 달하던 원전 이용률은 2018년 65.9%까지 하락했다. 초우량 기업이던 한전의 경영은 적자로 전락했다. 원전 대신 석탄 발전이 늘어나면서 미세 먼지 문제가 심각해지자 다시 원전 가동을 늘려 지난해엔 원전 이용률이 75.3%까지 올라갔지만 악화된 한전의 재무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는 없었다. 결국 임기 마지막 해에 두 자릿수 요금 인상을 결정하고는 그 부담을 대선 뒤로 미뤘다. 정부는 탈원전에 따른 전기 요금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예상대로 허언이 되고 말았다.

좋은 것은 임기 중, 나쁜 것은 임기 후로 미루는 것이 문 정부의 국정 패턴이다. 이 정부는 5년 내내 온갖 곳에 세금을 펑펑 퍼부어 나랏빚 1000조원 시대를 만들었다. 그래 놓고 예산 절감은 차기 정부인 2023년부터 하라고 떠넘겼다. 무책임한 국정의 전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