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총리가 소상공인·자영업자 55만명에게 손실 보상금 500만원을 ‘선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2주일 전만 해도 김총리는 “재정 집행에 어려움이 있다”며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선보상 후정산’의 손실 보상안을 내놓자 갑자기 말을 바꿔 이 후보 공약대로 행정 조치를 취하고 나섰다.
그동안 정부는 전 국민에게 현금 뿌리는 데만 재빨랐지, 벼랑 끝에 몰린 소상공인 구제는 더디기만 했다. 손실 보상의 법적 근거를 만든다며 시간을 질질 끌었고, 그나마 보상 금액도 터무니없이 적었다. 하지만 여당 후보가 요구하자 방침을 뒤집어 총 2조7500억원을 선지급하기로 했다. 올해 예산안에 책정한 손실 보상 재원 3조2000억원의 86%를 선거 전에 뿌리겠다는 것이다.
몇 달 전 산업부·여성가족부 등이 여당을 위한 대선 공약 발굴에 나서 ‘공약 납품’ 논란을 빚었다. 요즘은 정부 부처들이 여당 요구에 행정으로 호응하거나 대책을 급조하는 ‘정책 납품’으로 사실상 선거 지원에 나서고 있다. 이재명 후보가 쌀값 부양을 위한 ‘쌀 시장 격리’를 요구하자 정부가 쌀 20만톤을 사들이기로 결정했다. 사실 올해 쌀값은 예년 평균치와 비슷한데 이 후보가 농민 표심을 잡기 위해 선심성 제안을 하자 정부가 수용한 것이다.
이 후보가 “공시가격 재검토”와 “재산세·건보료 동결”을 요구하자 경제 부총리가 “1가구 1주택자 보유세 완화 방안을 (대선이 치러지는) 3월까지 발표할 것”이라고 바로 화답하는 일도 있었다. 코인 과세를 올해부터 반드시 시행하겠다던 정부가 이 후보의 ‘1년 유예’ 요구에 따른 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데도 입 다문 채 지켜보기만 했다. 헌법과 공직선거법이 명시한 ‘정치적 중립’ 의무를 무시한 채 행정부가 대놓고 여당의 ‘선거운동본부’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행정기관의 선거 개입을 감시해야 할 선관위는 편파적 행태를 숨기지 않고 있다. 선관위는 지난해 서울·부산시장 보선 때 대통령이 여당 대표와 함께 가덕도를 찾아 “눈으로 보니 가슴이 뛴다”고 하고, “4차 재난 지원금의 3월 중 집행에 속도를 내달라”고 한 것이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했다. 반면 투표 독려 현수막에 ‘내로남불’ ‘위선’ ‘무능’을 쓰는 것은 못 쓰게 했다. 행정부 전체가 여당 승리를 위해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