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가 지난달 정재훈 사장의 1년 연임을 의결했다고 한다. 정 사장 연임안은 주총 의결 절차도 거쳤다. 다음 달 4일 임기가 만료되는 정 사장 연임안은 산업부 제청과 대통령 재가만 남기고 있다.
정 사장의 연임 시도는 뻔뻔하다. 정 사장은 2018년 3월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시키겠다’는 직무 수행 계획서를 한수원 임원추천위원회에 낸 뒤 4월 취임했다. 취임하자마자 탈원전에 비판적인 사외이사들을 교체한 뒤 미래 이용률과 발전 단가가 조작된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를 주도했고 그걸 빌미 삼아 폐쇄를 밀어붙였다. 그 후 느닷없이 ‘원자력을 넘어선 종합 에너지 기업’을 내걸고 태양광 사업에 집착했다. 정 사장은 한때 한수원 이름에서 ‘원자력’을 빼는 것까지 검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석열 당선인은 탈원전 폐기를 대표 공약으로 내건 사람이다. 그런데도 탈원전 돌격대장 역할을 했고 그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이 새 정부에서도 한수원 사장 자리를 지키려는 것은 해도 너무하는 것이다. 정 사장의 연임 관련 절차들이 대통령 선거 이전에 진행된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 조차 지난달 말 “원전을 주력 기저 전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탈원전 정책 실패를 현 정부조차 인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정 사장은 연임은 아예 생각도 하지 말았어야 한다. 그는 작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희망한다”고 발언하는 등 최근 들어 탈원전과 거리를 두는 듯한 발언을 했다. 분위기가 바뀐 것을 의식한 기회주의적인 행태였다. 그는 이미 3년 임기에 1년 연임을 한 상태인데, 욕심이 지나쳤다.
정부는 지난달 김제남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을 한국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으로 임명했다. 임기 말 알박기 인사 사례라고 해야 할 것이다. 김 이사장은 환경 단체 사무처장 출신으로 탈원전, 반핵 활동을 했던 사람이다. 문재인 정부는 원자력 관련 기구의 이사장, 이사, 감사 등 자리에 유난히 환경 단체 사람들을 임명해왔다. 지금도 탈핵 법률가 모임을 주도했던 민변 전 회장이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원자력 관련 기구에서 환경 단체의 점령군 파견관처럼 행세해온 사람들은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알아서 자리를 비워주는 게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