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전 세계 중앙은행 총재들과 가진 연례 경제 심포지엄에서 “가계와 기업에 고통이 따르더라도 물가가 잡힐 때까지 금리를 계속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파월 의장은 8분여 연설 동안 ‘인플레이션’을 46번이나 언급하면서, “물가를 못 잡으면 고통이 훨씬 더 커진다” “금리 인상을 멈추거나 쉬어갈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1년 전 같은 모임에서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코로나발) 글로벌 공급망 충격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고 강변하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물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180도 달라졌다.

파월의 초강경 발언은 미국 물가가 7월을 정점으로 하향세로 돌아서고, 금리 인상 속도가 누그러질 것이란 시장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시장에선 미국이 9월 중 기준금리를 3.25% 수준(현재 2.5%)까지 끌어올릴 것을 예고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공포에 질린 미국 증시가 4% 가까이 급락했다.

미국의 가파른 금리 인상은 강(强)달러 현상을 촉발해 이미 전 세계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던지고 있다. 앞으로 파장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국 통화정책에 동조해 주요국들이 대거 금리 인상 대열에 동참하면서 주택 가격, 주가가 급락하고, 가계의 이자 부담이 불어나 소비위축 등 실물경제 침체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미국발 금리급등은 가계부채가 1900조원에 이르는 한국 경제에도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한은이 작년 8월 이후 기준금리를 2%포인트 올림에 따라 가계의 연간 이자 추가 부담액이 27조원에 달한다. 한은이 연내에 두 차례 금리를 더 올리면 우리나라 기준금리도 3% 수준에 이르고, 7조원대 추가 이자 부담이 발생하게 된다. 현재 우리 경제는 코로나 사태,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으로 세계 무역이 위축되고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바람에 7월까지 사상 최대 무역적자(150억달러)를 기록하는 등 나라 안팎에서 복합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정공법은 파월 의장의 호소처럼 정부, 기업, 가계가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고 생산성을 높여 물가보다 더 높은 성장률을 구현하는 것뿐이다. 고통의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선 정치권과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소모적 정쟁에서 벗어나 가계 채무 재조정을 돕고, 규제를 풀어 기업 투자를 촉진하는 정책을 하루빨리 입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