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의원들이 29일 오후 국회 본관 계단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안 처리에 항의하는 피켓 시위를 벌일 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해임안 처리를 마친 뒤 본회의장에서 내려오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이 29일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 건의안을 국회에서 단독 처리했다. 민주당이 자기 당 출신 김진표 국회의장을 통해 의사 일정을 변경하고 표결까지 마쳤다. 국민의힘은 반발했고, 정의당도 “해임 건의안을 정쟁 도구로 삼으려는 시도”라며 표결에 불참했다. 임면권자인 윤석열 대통령은 표결 전부터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해임안을 밀어붙인 것은 정의당 말대로 정쟁을 위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민주당이 밝힌 해임 건의 이유도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 순방 중 한미 한일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았고, ‘바이든 발언’ 논란으로 ‘외교 참사’가 벌어졌으니 박 장관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미 간 정식 회담은 미국 측 사정으로 불발했지만 두 정상은 4일간 3차례나 만났다. 백악관도 한미 정상이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 현안을 논의했다고 확인했다. 한일 정상은 30분간 만나 현안을 논의했다. ‘회담이 열리지 않았다’는 민주당 주장은 ‘회담이 아니라 간담’이라는 일본 측 발표와 같은 주장이다. 더구나 지금 한일 관계가 좋지 않은 것은 박 장관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책임이다. 왜 박 장관 책임인가.

‘바이든 발언’은 윤 대통령이 하지도 않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민주당은 발언 영상을 직접 찍은 MBC도 보도하기 전에 먼저 대통령 발언을 공개하고 문제 삼았다. 나중에 보니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음성 분석 전문가들이 말하고 있다. 윤 대통령 발언 맥락상 바이든은 맞지도 않는다. 하지도 않은 말을 근거로 엉뚱하게 외교장관 해임안을 낸 것이다. 무책임하다.

박 장관은 자신에 대한 해임 건의안이 통과되는 날 방한한 미국 해리스 부통령 일정을 치렀다. 미국 측도 한국 국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았을 것이다. 이 정도면 국정 발목 잡기를 넘어 국익 훼손 아닌가.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한창 외교 활동을 치열하게 하는 사람 등에 칼을 꽂는 일”이라고 했는데 틀리는 말이라고 할 수 없다.

지금 우리나라는 복합 위기 상황이다. 인플레이션과 국제 금융 위기, 미중 경쟁과 공급망 재편, 우크라이나 전쟁, 임박한 북한 7차 핵실험, 한일 관계 복원 등 외교장관이 대응할 일이 한둘이 아니다. 올가을 G20, APEC 정상 회의 등 다자 외교 일정도 연쇄적으로 잡혀 있다. 민주당은 이런 상황에서 박 장관을 ‘자국 국회에서 불신임을 받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것도 아무런 이유 없이 순전히 정부에 흠집을 내려는 정략으로 한 일이다. 민주당이 169석의 힘으로 지키려는 것은 국익이 아니라 오로지 당리(黨利)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