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디지털 인재 육성을 위해 도쿄의 대학 정원 규제를 푼다. 도쿄 23구에는 일본 807개 대학 중 도쿄대, 와세다대 등 101곳이 있다. 내년부터 이들 대학에 디지털 계열 학부와 학과를 신설하거나 정원을 늘리는 것이 허용된다. 일본은 지방 균형 발전 및 지방대 경영난 완화를 위해 지난 2018년 지역대학진흥법을 도입해 도쿄 도심의 대학 학부 신설과 정원 확대를 금지해 왔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는 지방 균형 발전 논리보다 수도권 규제를 풀어 첨단 IT 인재를 키우는 것이 훨씬 시급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뿐 아니다. 올 초 일본 문부과학성은 앞으로 10년간 이공대 학부 250곳을 신설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하는 대대적인 인재 육성 방안을 발표했다. 일본에서는 지난 6년간 137개 지방 대학에 첨단 디지털 학과가 신설돼 총 입학 정원이 2만1600명에 달한다. 올해도 17개 대학에 디지털 학과가 추가로 출범한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도쿄 소재 대학까지 디지털 인재 육성에 나서도록 규제를 푼 것이다. 반면 우리는 작년 연말 반도체 특별법이 가까스로 통과됐는데 정작 핵심인 수도권 대학 증원 등 인재 육성 방안은 지방 논리에 밀려 빠졌다.
기술 패권 시대에는 첨단 과학 인력을 양성하고 확보하는 것이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이다.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제조) TSMC를 보유한 대만의 경우, 한국에 비해 인구는 절반이 안 되는데 과학 기술 분야 졸업생은 2배도 넘는다. 2012~2021년 대만의 과학 기술 졸업생은 236만명에 달한다. 같은 기간 한국의 졸업생은 104만명 수준이다.
우리 경우 도를 넘은 의대 편중 현상까지 겹쳐 있다. 카이스트 등 4개 특수 대학에서 최근 5년간 1000명 넘는 학생이 중도에 그만뒀다. 이들 대다수가 의대로 진학한 것으로 추정된다. 카이스트의 경우, 2022년 기준 신입생의 70%가 과학고, 영재학교 출신이다. 국가 차원에서 과학 인재 육성을 목표로 하는 과학고·영재학교 출신들이 대거 이탈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등 주요 대학의 반도체 관련 학과 모두 최초 수시 모집에서 ‘0명 등록’을 기록했다. 합격을 하고도 아무도 등록을 하지 않아 최초 정원의 1.5배에 달하는 추가합격자를 뽑아야 했다. 주요 대기업 채용을 제도적으로 보장해도 소용없다.
현재의 과학 기술 분야 처우를 생각하면 70세 넘어까지 일할 수 있고 높은 보수를 받는 의대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과학 기술 인재가 없으면 AI 혁명도, 반도체 경쟁력도, 국가 경쟁력도 다 없다. 국가 전체 차원에서 과학기술 인재 양성 문제를 논의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