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가 어제 이종섭 주호주 대사를 당분간 소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 대사는 해병대원 순직 사건에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고발돼 수사받던 도중 부임지로 출국해 논란이 일자 11일 만인 지난 21일 전격 귀국해 공수처에 소환 조사 진행을 요청한 상태였다. 하지만 공수처는 압수물 분석과 참고인 조사 등이 불충분해 아직 이 대사를 소환할 단계가 아니라고 했다. 방산 협력 공관장 회의 참석을 명분으로 ‘임시 귀국’한 이 대사가 다시 출국할 때까지 소환 조사는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윤석열 대통령은 이 대사를 귀국시켜야 한다는 국민의힘 요구마저 거부하고 있었다. 총선을 앞두고 민심이 급속 악화하고 여당과 대통령 간 충돌 국면으로 비화하자 뒤늦게 불러들인 모양새다. 계속 귀국시키지 않고 버텼다면 상황은 더 나빠졌을 것이다. 최악은 면했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애당초 피의자 신분인 사람을 호주 대사로 임명해 출국시킨 것부터가 문제였다. 수사에 최대한 협조해 법적 절차를 마무리한 후에 현지에 부임하는 게 순리였다. 이 대사가 25일부터 참석한다는 방산 협력 공관장 회의도 이 대사의 귀국 명분을 만들고자 급조한 혐의가 짙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나머지 5국 주재 대사들은 들러리를 서기 위해 원래 일정을 무리하게 취소·조정했을 것이다. 외교를 이렇게 하는 나라도 있나.
이 대사를 둘러싼 논란은 외교적으로도 민망하기 짝이 없다. 정부가 이 대사 임명과 출국을 강행하자 야당은 이 대사를 ‘도주 대사’라고 불렀고 MBC는 호주에 부임한 이 대사를 카메라를 들이밀고 쫓아다니며 ‘범죄자 앵글’에 담긴 사람처럼 보도했다. 피의자 신분으로 부임한 지 11일 만에 다시 귀국한 것부터가 주재국에 대한 결례다. 이 대사는 호주 복귀 시점을 정하지 않고 귀국했다고 한다. 최소한 총선이 끝날 때까진 국내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대사 업무의 장기 공백과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렇게 첫 단추부터 잘못 꿰고 출발하는 이 대사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특명전권대사로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