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한덕수 국무총리와 주례 회동을 갖고 “의료계를 비롯한 사회 각계와 더욱 긴밀히 소통해달라”는 지시를 내각에 내렸다. 의대 증원 문제를 놓고 의료계와 한 치의 양보 없이 맞서던 윤 대통령은 의대 교수들의 집단 사직서 제출을 하루 앞둔 전날에도 ‘의료인과의 건설적 대화’를 주문했다. 정부가 불과 며칠 전까지 ‘의사 갑질 신고시 30억원 보상금’ 이라며 의사들을 몰아붙인 것과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윤 대통령의 소통 강화 지시는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지금 여론조사를 보면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정치권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여당의 고전은 여당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윤 대통령의 소통 부족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는 데 별 이견이 없다.
윤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논란과 관련해 ‘국민 눈높이’에 맞는 해명을 요청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했다. KBS 대담은 사과보다는 해명 위주였다. 해병대원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공수처 수사를 받던 이종섭 전 국방장관을 호주 대사로 임명해 출국시켰다. 여당에서 총선 직전 출국은 안 된다는 뜻을 전했지만 무시했다. ‘회칼 테러’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황상무 전 수석에 대한 사퇴 요구도 한동안 거부했다. 민심이 크게 악화한 뒤에야 황 전 수석 사표를 수리하고 이 대사를 불러들였다. 이 과정에서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참모들과도 제대로 소통하지 않았다고 한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당면한 문제들 가운데 해결할 수 없는 사안은 없었다. 윤 대통령이 마음을 열고 국민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면 애초에 문제가 되지도 않았을 수 있다. 그런 문제들을 이렇게 키운 것은 윤 대통령의 소통 부족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론이 험악해진 뒤에야 어쩔 수 없이 물러서는 일들이 되풀이됐다. 쉽게 고칠 수 있는 병을 암으로 키운 격이다. 많은 국민이 윤 대통령을 민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소통하지 않는 지도자로 여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윤 대통령이 늦게나마 소통을 강조한 것은 다행이다. 총선 결과가 어떻게 되든 윤석열 정부는 앞으로 3년을 더 일해야 한다. 국정은 국민 지지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금이라도 윤 대통령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