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의 내년도 예산이 올해보다 5.4% 증가한 1조8163억원으로 역대 최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예산 집행을 지휘해야 할 여가부 장관은 10개월째 공석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 김현숙 장관의 사표를 수리한 이후 새 장관을 임명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대통령실은 “(4월 총선 이후) 정부조직법을 고쳐 여가부를 폐지하겠다”고 했다. 차관 직무대행 체제로 폐지 수순을 밟으려 했다. 그러나 총선 참패로 야당이 반대하는 여가부 폐지가 어려워지자 지난 7월 ‘여가부 존치’를 발표했다. 여가부를 그대로 두기로 해놓고도 5개월째 새 장관 임명을 미루고 있는 것이다. 그 사이 적지 않은 예산과 인력이 낭비된 것은 불문가지다.
윤 대통령은 여가부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여가부는 정권 내 성비위 사건이 잇달아 터지는데도 원칙 대응은커녕 가해자를 비호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존재 이유를 의심하게 했다. 2001년 출범 이후 여성과 가족 분야에서 제 역할을 해오지 못했다는 비판도 많았다. 여가부 폐지 공약은 20~30대 남녀 유권자 사이에 젠더 논쟁을 일으키며 정치적 이슈가 됐다.
그러나 정부 부처 폐지는 입법 사안이다. 국회 다수당이 반대하면 불가능하다. 윤 대통령은 2022년 취임 후 5 개월 만에 여가부 폐지안을 만들었으나 21대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반대하자 추진하지 않았다. 22대 총선에서 참패했을 때 여가부 폐지는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이다. 그러자 윤 대통령은 장관 임명을 안 하고 조직을 껍데기로 만드는 방법으로 ‘없는 부서’ 취급을 하고 있다. 그런 부서에 국민 세금이 1조원 넘게 배정될 예정이다. 정부 조직이 이렇게 장난처럼 운영된 적이 있었는가 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