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새해 첫 금리 결정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3.0%로 동결했다. 경기 부양을 위해선 금리 인하가 필요하지만, 금리를 내리면 계엄 사태 후 1480원 선까지 치솟은 원·달러 환율이 더 불안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은은 계엄 사태와 정치 불안이 촉발한 환율 상승분이 30원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경기 상황만 보면 금리를 내리는 것이 당연한 상황”이라면서도 환율 변수가 금리 동결의 주요인이라고 했다.
이 총재는 “계엄 사태 영향으로 작년 4분기 소비, 내수 지표가 많이 떨어졌다”면서 경기 부양을 위해 15조~2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시급하다고 했다. 한은 총재가 정부에 추경 편성을 요구하고, 추경 규모까지 거론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내수 침체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다.
소비는 작년 3월 이후 9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고, 산업 생산도 3개월째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여기에 계엄 사태까지 겹쳐 고용 쇼크가 발생하고 있다. 계엄 사태가 있었던 작년 12월, 건설 부문 취업자 수가 1년 전보다 15만7000명이나 줄었고, 전체 근로자 수도 5만명 넘게 감소했다. 전체 취업자 감소는 코로나 사태 절정기였던 2021년 3월 이후 3년 10개월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정부는 경기 부양책의 일환으로 상반기 중 전체 예산의 67%를 조기 집행하기로 했다. 정부는 예산 조기 집행 효과부터 살펴 보고 판단하자며 추경 편성을 미루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선용’ 추경은 안 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 한은 총재 말대로 경기 부양용 추경을 할 거면 “가급적 빨리” 하는 게 효과가 더 클 것이다. 여야정 정책 협의회를 열어 추경 편성 방안부터 논의할 필요가 있다. 추경안에는 경기 진작 파급 효과가 큰 건설 경기를 살리는 방안이 포함돼야 할 것이다.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율을 5%포인트 더 올리는 K칩스법, 중소·중견기업 투자 세액 공제 적용 기한을 2년 연장하는 법안, 전통시장 신용카드 공제율 확대 등 국회에 막힌 각종 민생 법안들도 하루빨리 통과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