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외무성이 26일 “미·한이 각종 전쟁 연습들을 벌려놓고 있는 것은 조선 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정 보장에 대한 엄중한 도전 행위”라며 “미국과는 철두철미 초강경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표면적으로 북한이 문제 삼은 것은 한·미 공군이 지난 21~24일 실시한 ‘쌍매’ 연합 훈련이다. 하지만 북한의 속내는 앞으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의 대화가 재개될 것에 대비해 한·미 연합 훈련 중단 같은 여러 협상 카드의 값어치를 높이려는 데 있을 것이다. 김정은은 이날 순항미사일 발사를 참관하며 “무력의 전쟁 억제 수단들”이 완비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이런 북한의 요구를 수용할 수도 있다는 신호가 나오고 있는 점은 더욱 우려스럽다. 트럼프는 취임 후 첫 언론 인터뷰에서 “김정은은 똑똑한 사람”이라며 연락을 취하겠다고 했다. 트럼프의 측근으로 알려진 프레드 플라이츠 미국우선주의정책연구소(AFPI) 부소장은 “북한과의 협상이 가능하다면 한·미 연합 훈련 중단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J D 밴스 미 부통령은 “트럼프와 전임자들의 차이는 가장 귀중한 자원인 미군의 (해외) 파병에 인색해야 한다는 시각”이라고 했다. 주한 미군 감축이나 한·미 연합 훈련 중단은 북한 김씨 일가의 숙원인데, 트럼프 행정부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미·북이 이것으로 협상의 물꼬를 트려 한다면 우리 안보에 당장 적신호가 켜진다고 봐야 한다.
트럼프와 피트 헤그세스 신임 국방장관 등은 북한을 “핵무기 보유 세력(nuclear power)”이라고 불렀다. 미 본토를 위협하는 ICBM을 반출 또는 폐기하고, 핵능력을 동결하는 수준에서 북한과의 협상을 타결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 말이다. 예전에도 미국이 이런 생각을 전혀 안 했던 것은 아니다. 미국에 신임 행정부가 출범하면 핵 동결을 포함한 모든 옵션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북 정책을 재검토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미국의 행정부 교체기가 되면 우리 대통령부터 외교·안보 당국자들이 앞다퉈 미국을 방문해 대북 정책에 한국의 입장이 반영되도록 설득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손발이 묶여 있다. 트럼프를 직접 설득하는 정상 외교는 불가능하다. 미·북 협상에서 ‘과속’ 사고가 날 확률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이런 비상한 시기인 만큼, 더 비상한 각오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과 외교부는 모든 라인을 동원해 미국과 대북 정책을 조율할 채널을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