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국민연금 모수개혁(내는 돈, 받는 돈 조정)을 먼저 처리하자는 민주당 제안에 대해 “반드시 구조개혁을 수반해야 한다”며 반대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최근 이재명 대표가 연금 개혁을 띄우는 것은 대선용으로 이미지에 분칠하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권 대표의 이 말은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국정 책임을 진 여당이라면 이 기회를 살려 연금 개혁을 해야 한다. 연금 개혁은 한시도 늦출 수 없는 절박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역대 정권 누구도 연금 개혁을 제때에 하지 않아 지금 1년에 약 32조원, 하루 885억원씩 기금 적자가 불어나고 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천문학적 숫자다. 이 불을 끄는 데 누가 정치적으로 이용하느니 마느니를 따질 때가 아니다. 국민은 민주당이 연금 개혁의 발목을 잡아 온 지난 과정을 알기 때문에 이 대표가 연금 개혁의 공을 독차지하지도 못한다.
국민의힘이 여야가 의견 접근을 본 상태에서 돌연 어깃장을 놓은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21대 국회 막판 여야는 ‘보험료율(내는 돈) 13%, 소득대체율(받는 돈) 44%’ 조정안에 사실상 합의했지만 대통령실과 국힘이 갑자기 국회 처리를 막고 나섰다. 김건희 특검법을 막아야 하는데 초점을 흐린다는 이유였다. 그때 국힘의 표면상 명분은 연금 구조개혁과 함께 하자는 것이었다. 지금 기초연금·퇴직연금을 포함한 연금 구조개혁을 논의하자는 것은 연금 개혁을 하지 말자는 것과 동의어다. 빠른 시일 내 합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힘은 이번에도 구조개혁을 하자는 이유를 댔다. 그것이 연금 개혁 발목 잡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자신들이 잘 알 것이다.
연금 구조개혁도 필요하나 수많은 사람의 이해관계가 얽힌 장기적인 과제로서 지금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국힘 의원도 “선진국 사례를 보면 구조개혁은 아무리 빨라도 10년 정도 걸린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에 앞서 1년에 수십조 원의 적자가 쌓이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이대로 두면 국민연금은 앞으로 30년 버티기도 힘들다. 국민연금 파탄의 죄과를 어떻게 치르려고 이러나. 국힘의 행태는 정치적 셈법에만 빠져 국민에 대한 기본 의무를 저버린 무책임하고 속 좁은 어깃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