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4일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8년 만에 대통령 중도 퇴진 사태가 재연됐다. 작년 말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 넉 달간 이어져 온 혼란과 갈등은 박 전 대통령 때보다 심했다. 하지만 이번 결정 직후엔 국민의힘이 곧바로 승복과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고, 탄핵 찬반 집회도 큰 사고 없이 마무리됐다. 8년 전 4명이 사망하고 63명이 다치는 불상사가 벌어진 것과 비교된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 국민은 비록 분열해 있고 대립도 심하지만 지켜야 할 선은 지키는 지혜로운 국민이다. 이제 정쟁과 혼란의 굴레에서 벗어나 조속히 국정 정상화의 길로 가야 한다.
헌재는 이날 재판관 8명 전원일치로 파면 결정을 내렸다. 비상계엄 상황은 전 국민이 TV로 지켜보았다. 헌법이 정한 비상계엄의 요건에 맞는지, 국무회의 등 합당한 절차를 지켰는지, 계엄 선포 후 법이 정한 국회 활동의 자유를 방해했는지 등 핵심 문제가 전부 목격됐다는 뜻이다. 윤 대통령이 추천하고 임명한 헌법재판관들도 모든 주요 쟁점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의 좌절감은 클 것이다. 이들은 민주당이 총리·장관 등에 대해 30차례에 걸친 줄탄핵과 방탄, 입법 폭주로 국정이 흔들리는 상황에 분노해 거리로 나왔다. 민주당과 탄핵 찬성 단체들이 이들을 폄하하거나 자극하면서 탄핵을 자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것은 누가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라 한국 정치의 비정상과 비극의 한 단면이다. 좋아할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 일부 의원이 ‘반헌법 행위자 처벌법’을 발의한 것은 경솔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이 이들이다. 정당 지도부와 주요 대선 주자들도 지지층을 설득해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더 이상의 갈등 조장과 선동은 안 된다.
이제 60일 내에 대통령 선거가 실시된다. 지난 넉 달간 국민들은 심리적 내전 상태라고 할 만큼 갈등을 겪었다. 대선은 불가피하게 갈등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높지만 정치권이 하기에 따라서는 갈등을 줄이고 국정을 정상화하는 계기로 만들 수도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선이 공정하게 치러질 수 있도록 선거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대선 주자들도 국민 통합 노력과 함께 더 이상 과거가 아니라 국가 현안과 미래 비전을 놓고 경쟁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계엄·탄핵 사태를 거치면서 지금의 대통령제로는 더 이상 나라가 원만하게 운영되기 힘들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분명하게 드러났다. 1987년 개헌 이후 선출된 대통령 8명 중 3명은 퇴임 후 구속됐고, 1명은 수사를 받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 3명이 탄핵소추돼 2명이 파면됐다. 그런데도 그간 모든 대통령은 당선만 되면 권력에 누수가 생길까 봐 개헌을 외면했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어느 때보다 크다. 여야 원로와 주요 대선 주자들이 모두 개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오직 이재명 대표만 개헌에 대한 소극적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설사 이 대표가 정권을 잡는다고 해도 현행 대통령제의 무한 정쟁 구조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여당은 대통령의 친위대로 전락해 전횡을 일삼고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되풀이할 것이다. 이래선 극한 대치와 갈등, 탄핵이라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현실적으로 60일 남은 대선까지 개헌을 추진하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여야 정당과 대선 주자들이 ‘여야 협의 정치’를 핵심으로 하는 개헌안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대선 후 곧바로 국회 개헌특위에서 이를 종합해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 임기만 보장되면 새 대통령이 누구든 반대할 이유가 없다. 개헌이 된다면 후진적 정치를 바꾸고 우리도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정쟁으로 지새우는 사이 나라 밖에선 전례 없는 위기의 파도가 몰려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막무가내식 관세 폭탄으로 경제 위기는 심화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줄줄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고 수출은 이미 줄고 있다. 트럼프·김정은 이벤트 가능성 등으로 안보 불확실성도 크다. 이 때문에 대선 때까지 과도기 두 달이 위험하고 긴요한 기간이다. 불필요한 정쟁을 자제하고 여야와 정부가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이제 모두가 결과에 승복하고 자중하며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분열과 갈등을 멈추고 나라를 정상화시켜야 한다.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고 우리 모두를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