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혁명을 주도하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앞으로 4년간 최대 5000억달러 규모의 AI 인프라를 미국에서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무역 적자를 해소하고 기업들이 미국에서 제품을 생산하도록 관세전쟁을 벌이자 대규모 미국 투자를 발표한 것이다. 엔비디아 제품이 만들어지려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 메모리 업체, 패키징 업체 등이 필요하다. 엔비디아에 HBM을 공급하는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도 이 투자의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되지만, 압도적인 수혜 국가는 AI 생태계를 굳건하게 형성한 대만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1위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의 TSMC는 수요가 폭발하는 엔비디아의 AI용 GPU(그래픽처리장치) 생산 물량을 사실상 독점해 독보적인 공급망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AI 시장의 폭발적 성장세에 힘입어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33.9%, 43.5% 늘었다. 엔비디아의 최신 AI칩 블랙웰도 미국 애리조나주 공장에서 생산하기 시작했다.
TSMC만이 아니다. 현재 대만은 AI 반도체를 제조하는 TSMC, 내장형 AI 반도체를 설계하는 미디어텍, AI 서버를 생산하는 콴타 등 관련 기업들이 AI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최근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는 대만 1위 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 미디어텍과 공동 작업을 하고 있다고 공개했다. 1997년에 설립된 미디어텍은 과거 삼성전자에 중저가 모뎀칩을 공급하던 회사였는데 20여 년 만에 엔비디아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만큼 기술력이 입증돼 AI 스타 기업으로 등극했다.
지난해 대만에서 열린 IT 박람회에서 대만 총통이 “과학기술계 모든 사람이 노력해 대만을 AI 혁명의 구심점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대만 정부의 역할도 컸다. 2021년 ‘대만 AI 행동 계획 1.0’으로 주요 대학에 AI 연구 센터를 설치했고 2023년 ‘행동 계획 2.0’으로 매년 AI 연구 인재 600명, 응용 인재 8000명 양성에 나섰다. 지난해에는 ‘국가 인재 경쟁력 도약 방안’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2028년까지 4년간 AI 인재 20만명을 양성하겠다고 했다.
중국 AI도 발전하지만 미국 패권이 압도적이다. 지난해 미국의 AI 민간 투자는 중국의 10배가 넘는다. 미국 시장이 승부처인데 우리는 우수 인재, 혁신적 스타트업 등 필요 조건에서 다 뒤처지고 있다. 얼마 안 되는 AI 인재조차 해외로 빠져나간다. 스탠퍼드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AI 인재 유출은 해마다 커지고 있다. 대부분 미국 빅테크 기업들로 간다고 한다. 이대로 가면 우리는 AI 시대의 낙오자가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