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미국발(發) 관세 충격 속에서도 올 1분기 7조4405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매출 대비 영업이익률이 42%에 달해,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시장을 지배하는 대만 TSMC의 48%에 육박했다.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율도 1분기에 36%를 기록해 처음으로 세계 1위로 올라섰다. 만년 2등이던 기업이 혁신의 힘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으로 도약한 것이다.

2000년대 초만 해도 하이닉스는 경영난에 시달리며 채권단 관리를 받던 부실 기업이었다. 한 해 2조원 가까운 적자를 내 전기요금까지 체납할 지경이었고, 주가가 125원으로 떨어져 ‘동전주’로 조롱받았다. 하지만 파산 위기 앞에서 인원을 절반으로 줄이고 5년 연속 급여를 동결하는 등의 혹독한 구조조정에 나서 위기에서 탈출했다. 이후 SK그룹에 인수되면서 과감한 선제 투자와 기술 개발에 매진해 혁신 기업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SK하이닉스를 도약시킨 HBM(고대역폭 메모리) 반도체 개발도 ‘헝그리 정신’의 산물이었다. 2010년 엔비디아가 고용량 D램 개발을 요청해 왔을 때 삼성전자는 주저했지만 하이닉스는 밀어붙였다. HBM은 고난도의 패키징 공정을 거쳐야 하고 수율도 낮은 데다 가격이 비싸 수요처가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하이닉스는 만년 2등을 벗어나려면 모험을 해야한다며 도전하는 쪽을 선택했다. HBM의 전망이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SK하이닉스는 뚝심 있게 투자를 계속했고, 2013년 메모리 칩을 수직으로 쌓아 올린 HBM을 세계 최초로 제품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AI(인공지능) 시대가 열려 AI 가속기용 HBM 수요가 폭증하면서 SK하이닉스는 선제 투자의 결실을 거두게 됐다. HBM 신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완판되면서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남을 모방하는 ‘추격자 모델’에서 탈피해야 1등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는 독보적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지난해 세계 최초로 5세대(HBM3E) 8단·12단을 양산해 엔비디아에 납품했고, 올 3월엔 6세대 HBM4 12단 시제품을 내놓았다. 범용 D램 역시 SK하이닉스가 세대 교체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2020년 세계 최초로 DDR5를 양산했고, 지난해엔 6세대(1c) 10나노급도 세계 최초로 개발에 성공했다. 앞선 기술력으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다시 기술을 끌어 올리는 혁신의 선순환에 올라탄 것이다.

관세 전쟁과 보호무역의 충격 속에 마이너스 성장이 계속되는 한국 경제지만, 어떻게 난관을 돌파할 것인지 SK하이닉스가 해답을 보여주고 있다. 어려운 환경일수록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과감한 기술 개발과 선제 투자로 혁신을 이루어내는 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