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체포 직전에 “요즘 레거시 미디어는 너무 편향돼 있으니 유튜브에서 잘 정리된 정보를 보라”고 말했다는 얘기를 들은 날이었다. ‘유튜브에 잘 정리된 정보’가 어떤 것인지 몹시 궁금했다. 검색창에 ‘부정선거 증거’라는 여섯 글자를 넣어봤다. 순식간에 영상 수천 개가 화면에 떠올랐다. 이 중에서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레거시 미디어, 즉 기성 언론사가 편집하고 만든 영상을 제외하고, 개인 유튜버들의 자기주장을 담은 것만 계속 클릭해 봤다. 이윽고 깨달았다. 내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는 것을.
이날 이후 나의 유튜브 첫 화면은 완전히 달라졌다. ‘잠 잘 오는 음악’ ‘허리 아플 때 하는 운동’ ‘간헐적 단식’ 등으로 채워졌던 내 유튜브 계정에 붉은 글씨, 노란 글씨가 울부짖는 영상부터 올라오기 시작했다. ‘헌재에서 받아들인 부정선거 증거! 중국인 명단 줄줄’ ‘탄핵 찬성 집회를 메운 중국인들!’ ‘트럼프가 직접 경고! ‘윤통 체포는 미국에 대한 도전!’’
반대파들 주장도 보였다. ‘공수처는 윤통 편이다!’ ‘일본에 사업 특혜 준 김건희’ ‘김건희가 수척해졌다고? 배달 음식 매일 시킨다던데’ 같은 영상들이 대표적이었다. 기본적인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은 터무니없는 주장을 클릭할수록 다음 날엔 더 극단적인 주장을 전파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매운맛을 한번 봤더니 더 매운 맛만 보여주는 식이었다.
한국 정치 유튜버들이 음모론을 퍼뜨리는 데 얼마나 열심인지도 이번에 알았다. 이들은 거리낌이 없었다. 선동적인 주장을 펼수록 ‘수퍼챗(유튜브 시청자가 유튜버에게 채팅창으로 송금하는 돈)’이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선관위에서 잡힌 중국 스파이가 미군 기지로 이송됐다”고 했고, “요즘 집회 시위를 막는 경찰 대부분은 외국에서 고용된 용역 알바”라고도 했다. 반대파들은 한편 “탄핵 반대 집회엔 돈 받은 노인들만 온다”고 했고, “윤 대통령의 외가엔 일본 신흥 종교 ‘남묘호렌게쿄’의 액자가 걸려있고, 이는 윤통 집안이 골수 친일파인 것을 입증한다”고 했다.
19일 서울서부지법 유리창을 깨고 청사로 난입했던 시위대가 왜 그토록 흥분 상태였는지 조금 알 것도 같았다. 붉은 자막 노란 자막의 반복된 선동은 전두엽을 지속적으로 자극한다. 선동에 앞장섰던 유튜버들은 그래도 돈을 벌었다. 서부지법에 난입했다 연행된 한 유튜버는 잠깐의 방송만으로 수퍼챗 850여 만원어치를 벌었다고 한다.
찾아보니 음모론자 유튜버 중엔 ‘원조’도 따로 있었다. 2012년 ‘K값 의혹’을 내세우며 박근혜 후보가 승리한 18대 대선 결과를 걸고 넘어졌던 친민주당 유튜버 김어준씨다. 당시 김씨는 투표지 분류기가 분류를 제대로 못 해 수개표한 표 중 박근혜 후보의 표가 문재인 후보의 표보다 1.5배 많은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지금의 부정선거 의혹은 이때 그가 뿌린 씨앗에서 튼 싹이 넝쿨처럼 자라 양쪽 진영의 담을 타고 덮은 모양새가 됐다.
이런 검증되지 않은 음모론을 퍼뜨린 이들이 국내에서 제대로 처벌받았다는 얘기를 들어본 기억은 그러나 그리 많지 않다. 미국의 앨릭스 존스란 사람은 2012년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참사를 조작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가 2022년 코네티컷주 법원에서 약 9억6500만달러를 배상하란 판결을 받았고 유튜브 계정도 차단됐다. 독일에선 유대인 학살을 부정하는 주장을 확산시키는 것이 법으로 금지된다. 우리도 이젠 음모론을 양산하는 이들에게 제대로 제동을 걸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 그냥 이들 어법으로 말해보겠다. “경고! ‘카더라’로 돈 번 놈들, 이젠 다 감방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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