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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유재석을 다룬 위인전을 읽은 적이 있다. 꼭 10년 전, 그의 나이 마흔세 살 때 출간된 어린이 만화 위인전 시리즈. 이사를 많이 다녔고, 반장이 된 아들을 위해 어머니는 학교 청소를 자처했다는 등의 시시콜콜한 얘기부터, 주요 발자취를 정리한 인물 연표까지 수록해 그의 위대함(?)을 칭송하는 책이었다. 웃음을 주고 인기도 높은 데다 기부도 자주 하니 그만하면 훌륭한 삶이라 할 테지만, 아무리 그래도 위인전까지야. 본인도 민망했던 모양이다. 어느 방송에서 한 아이가 “아저씨 책 봤다”며 내용을 줄줄 외자 유재석은 “제 의사와는 상관없이 발간됐다”고 쩔쩔맸다. 사실과 다른 내용을 바로잡기도 했다. 어찌 보면 피해자다.

유명하면 장땡인 세상이기는 하다. 이순신·장영실·헬렌 켈러보다, 이제는 아이돌 가수(아이브)나 유튜버(도티)를 더 닮고 싶어 하는 아이가 많다. 이들의 업적을 조명한 책도 이미 나와 있다. 위인을 롤 모델로 바꿔 부른다면 이 세태를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다만 취사 선택된 너무도 짧은 역사의 설익은 추앙이 위태로워 보일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 직후에는 ‘원칙과 소신의 대통령 윤석열’이라는 책이 나왔다. 아동 도서로 분류돼 있다. 연대기 순으로 서술된 성장 서사. 그러나 아무리 잘 봐줘도 이것이 사서(史書)일 수는 없다. 온라인 서점 리뷰 창마다 성토가 한가득이다.

다음 달 출간 예정인 이재명 전기 만화의 한 장면. 출판사는 "책의 목적은 개인을 영웅으로 추어올리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지만, 의문 부호가 따라 붙는다. /비아북
다음 달 출간 예정인 이재명 전기 만화의 한 장면. 출판사는 "책의 목적은 개인을 영웅으로 추어올리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지만, 의문 부호가 따라 붙는다. /비아북

다음 달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다룬 만화 전기(傳記)가 서점에 깔린다. ‘친일파 열전’ 등을 펴낸 역사만화가 박시백이 이 대표의 유년부터 대선 후보 시절까지 행적을 그렸다고 한다. “단 하나의 작업 원칙이 있다면 철저히 사실에 입각하는 것”이라고 출판사는 홍보했다. 그러면서도 “이 대표에게 가해지는 공격은 오래전 해명된 루머가 대다수”라며 “그럼에도 끝없이 거짓 비방이 수면 위로 끌려 올라오는 데는 언론과 기득권의 역할이 크다”고 했다. “현실 정치가이자, 기득권과 싸워온 투쟁가요, 성공을 자랑 삼지 않고 올챙이 시절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의도가 빤히 읽힌다.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다. 고인(故人)이라면 망자에 대한 예우로 대충 참아줄 수도 있다. 그러나 미완의 인생을 굳이 미학적으로 정돈하려다가는 훗날 바보 취급당할 수도 있다. 반전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가 고은 시인 아닌가. 오랜 세월 한국 대표 문인으로 온갖 지면을 장식하다가 성 추문으로 명성이 고꾸라진 게 그의 나이 85세 때였다. 아주 나중에야 드러나는 삶의 윤곽, 그러니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는 교훈. 오히려 어린이에게 진정 필요한 메시지는 그 흔한 유사 위인전보다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 ‘타짜’의 이 대사일지도 모르겠다. “인생, 관 뚜껑에 못 박히는 소리 들어봐야 아는 거 아냐?”

위에 언급된 모든 생존 인물보다 탁월한 업적을 남긴 스티브 잡스는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교언영색의 어설픈 위인전이 자신의 성취를 얼마나 멋쩍게 할지. 그는 전기 작가 월터 아이작슨에게 직접 인터뷰를 부탁해 스스로의 과거를 종합하고자 했다. “내가 죽고 나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한 책을 쓸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그들이 뭘 알겠습니까? 제대로 된 책이 나올 수가 없을 겁니다.” 성공이든 실패든 그의 커리어가 아직 진행 중이었기에 “아직은 아니다”라며 수차례 고사했던 아이작슨은 암 투병 소식을 듣고서야 작업을 수락했다. 그리고 “극도로 지저분한 부분까지” 기록에 담았다. 집필을 도운 잡스의 아내는 말했다. “그게 진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