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한 아기의 사진과 양천 입양 아동 학대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아기의 이름은 정인. 입양되기 전에 환하게 웃던 정인이는 입양 이후 학대로 인해 멍들고 야윈 모습으로 변해갔다. 사진은 위력이 있었다. 아동 학대의 참상을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정인이 사진을 보면 우리 딸 16개월 때가 떠올라서 눈물이 납니다.” 소셜미디어에 애도의 말이 쏟아졌다.
9만명 넘는 사람이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에 참여하며 관련자 엄벌을 촉구했다. 와중에 일부 무례한 말도 함께 따라왔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피해 아동의 외모에 대해 ‘못생겼다’고 조롱하는 댓글이었다. “정인이 사진 보면 볼수록 못생겨 보인다.” “몰골이 상접하고 그늘진 얼굴은 그냥 처음부터 정인이가 못생겨서 그런 것 같은데….” 이미 사망한 피해 아동을 외모 비하로 다시 한번 짓밟는 모습이 참담하고 기가 막혔다.
또 다른 종류의 참담한 말들도 있었다. 이번엔 2021년 3월 경북 구미의 빌라에서 숨진 채 발견된 3세 여아의 경우다. 한 언론사는 사망한 피해 아동의 생전 얼굴을 공개하면서 ‘너무 예쁜데 왜 이런 일이'라는 뉴스 제목을 달았다. 사진이 소셜미디어로 퍼져나가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아이 얼굴이 예뻐서 더 가슴이 아프네요.” 읽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피해 아동의 얼굴이 ‘예뻐서’ 더 가슴 아프고 그렇지 않아서 덜 가슴 아픈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아이의 얼굴을 평가하며 애도하는 댓글에서 고인에 대한 예의 대신 폭력을 느꼈다.
외모를 평가하는 말은 칭찬이든 흉이든 무례하다. 못생겼다며 비하하는 경우도 참혹하지만 예쁘다는 표현도 적절하지 않다. 가해자인 어른은 마스크에 모자까지 쓴 채 얼굴을 가리고 있는데 피해 아동은 만천하에 얼굴이 공개된 채 외모 품평이라는 2차 피해까지 당하고 있다. 죽은 피해 아동에게도 인권이 있다. 외모와 신체 조건을 함부로 언급하지 않는 것이 다른 사람의 인권을 존중하는 태도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림책 ‘유리 소녀'를 보면 유리처럼 투명하고 예쁜 아이가 등장한다. 아이의 이름은 지젤. 어른들은 빛을 내며 반짝이는 지젤에게 온갖 찬사를 보낸다. “어쩜 저리 아름다울까!” 그러나 아이가 커가면서 어른들이 별로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이 드러나자 이렇게 꾸짖는다. “그런 끔찍한 것들을 드러내 보이다니 부끄럽지도 않니?” 아이의 내면과 외면을 자기 기준으로 함부로 판단하는 어른들의 이야기다. 이 그림책은 아이뿐 아니라 어른들이 꼭 펼쳐 보았으면 한다. 어른의 무례한 말에 우리 아이들이 깨진 유리처럼 산산조각 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수 겸 배우 설리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쓴 시를 아이들과 함께 읽은 적이 있다. 최진리 어린이는 ‘나에 대해서’라는 제목으로 이런 시를 썼다. ‘사람들이 왜 나를 예뻐하는지 잘 모르겠다. (…) 왜 나만 귀여워하고 예뻐할까? 난 사람들의 그런 점이 정말 싫다.’ 시를 찬찬히 읽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최진리 어린이는 ‘귀엽고 예쁘다’라는 말을 듣는 걸 왜 싫어했을까요? 못생겼다는 것도 아니고 예쁘다는 말인데 왜 기쁘지 않았을까요?” 한 아이가 이렇게 대답했다. “예쁘다는 말도 결국 남들이 나를 ‘얼평’(얼굴 평가)하는 거니까요. 그럼 남들 눈치를 봐야 하잖아요.”
문득 사진첩을 열어 아이들이 찍어 보내준 셀카 사진들을 보았다. 하나같이 이마에 토끼 귀가 달리고 양쪽 볼에 수염이 달린 기이한 모습이었다. 다양한 개성을 지닌 아이들이 카메라 앱에 장착된 필터를 거치면서 모두 엇비슷하게 깜찍한 얼굴이 되고 말았다. 많은 아이들이 ‘얼평’을 당할까 봐 필터 뒤에 숨어서야만 안심하고 사진을 찍는다. 필터 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사진 찍을 용기를 내지 못한다.
아이들은 왜 사진을 찍을 때 필터를 써서 얼굴을 가릴까?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누군가 자신의 외모를 평가하는 무례를 당하고 싶지 않아서다. 우리 사회가 외모를 품평하는 표현에 담긴 폭력성에 조금 더 민감해졌으면 한다. 못생겼다는 막말이나 예쁘다는 무례한 말로 상처받는 아이들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도록 신중하게 말하자. 죽은 피해 아동에게도, 그리고 지금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아이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