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먹·찍먹’은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 먹느냐’(부먹), ‘찍어 먹느냐’(찍먹) 중 어느 쪽이 옳은지를 놓고 벌이는 논쟁이다. 음식에 별 관심 없는 분들에겐 하찮게 들리겠지만, 탕수육 마니아들에게는 대단히 심각한 주제다.
‘부먹’을 지지하는 이들은 ‘소스가 배어들었을 때 비로소 탕수육으로서 완성되며, 소스를 붓지 않았다면 단순한 고기 튀김일 뿐 탕수육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반면, ‘찍먹’파(派)들은 ‘바삭함을 최대한 즐길 수 있게 소스를 살짝 찍어야지, 소스에 젖어서 퍼져버린 탕수육은 더 이상 탕수육이랄 수 없다’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부먹·찍먹 논란의 원인 제공자는 다름 아닌 배달이다. 탕수육은 원래 부먹밖에 없었다. 찍먹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찍먹이 등장한 건 빨라도 1980년대 이후, 중식당들이 배달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부터다. 지금도 그렇지만 탕수육은 짜장면, 짬뽕과 함께 가장 인기 높은 메뉴. 튀김옷을 입혀 튀겨낸 고기를 소스에 버무려 바로 손님상에 낼 수 있는 식당에서와 달리, 집에서 먹는 탕수육은 배달에 걸리는 시간 동안 튀김옷이 눅눅해지다 못해 심지어 흐물흐물해져 맛이 떨어졌다.
중식당 주인들은 어떻게 하면 탕수육을 최대한 맛있게 배달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다 소스를 고기 튀김에 버무리지 않고 별도 그릇에 담아 배달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손님이 소스를 고기 튀김에 직접 부어 먹도록 했다. 소스가 충분히 배어들지 않는다는 단점에도 확실히 덜 눅눅했다.
사람들은 차츰 배달된 탕수육에 소스를 붓지 않고 찍어 먹어도 맛이 괜찮다는 걸 알게 됐다. 찍먹의 탄생이었다. 찍먹은 갈수록 인기가 높아졌다. 이제는 중식당에서 먹을 때조차 소스를 따로 내주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한국은 배달이 음식 문화에 미친 영향이 크다. 배달의 역사도 긴 편이다. 조선 말기 문신·서예가 최영년(崔永年)이 쓴 ‘해동죽지(海東竹枝)’에는 효종갱(曉鍾羹)이라는 고급 해장국이 나온다. 국내 문헌에 기록된 가장 오래된 배달음식이 아닐까 싶다. 효종갱은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의 명물 음식이었다.
송이버섯, 표고버섯, 소갈비, 해삼, 전복 등 값비싼 식재료를 배추속대·콩나물과 함께 초장에 섞어 하루 종일 끓인다. 밤에 국이 다 끓으면 항아리에 담고 솜으로 싸서 서울 고관대작 집으로 보낸다. 새벽[曉] 종(鍾)이 울릴 때쯤 도착한다 하여 효종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설렁탕은 일제강점기 경성(京城·서울)의 인기 배달 메뉴였다. 양반들은 맛있는 설렁탕을 먹고 싶었지만, 백정이 주로 운영하던 설렁탕 집에 가면 천민과 어울리게 되니 출입을 꺼렸다. 궁리 끝에 양반들은 설렁탕을 집으로 배달시켜 먹었다.
냉면은 식당에서 먹는 손님보다 배달시켜 먹는 이가 더 많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요즘은 오토바이를 타지만, 당시 배달꾼들은 주로 자전거를 이용했다. 길이가 150㎝나 되는 큰 목판에 냉면을 20그릇이나 얹어 오른쪽 어깨에 메고 왼손으로 자전거 핸들을 잡고 경성 도로를 달렸다.
지난 월요일부터 오후 6시 이후 2인 초과 모임 금지 등 사회적 통금이 더욱 엄격해지면서 음식 배달이 폭증하고 있다. 배달은 이제 식당의 생존을 좌우하게 됐고, 우리 식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배달이 부먹 찍먹에 버금가는 또 다른 변화를 가져올까. 이를 알아보려고 얼마 전 배민아카데미에서 펴낸 ‘배달도 되는 레시피’라는 요리책을 펼쳤다. 배민아카데미는 배달 앱 ‘배달의민족(배민)’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외식업 자영업자들에게 온·오프라인으로 제공하는 교육 프로그램. 배민이 요리책을 펴낸 목적은 배달 포장 음식을 최대한 맛있게 조리하는 팁을 외식업주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다.
이 요리책에 나온 한식·일식·중식 레시피는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양식에서는 눈에 띄는 차이가 있다. 파스타 소스, 특히 크림 소스의 경우 일반 매장이나 가정에서 바로 먹을 때보다 묽게 만들라고 조언한다. 배달되는 동안 소스가 식으면 굳을 수 있는데, 소스의 농도를 묽게 하면 식어도 굳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가루 치즈는 소량만 아니면 아예 뿌리지 말라는 팁도 있다. 치즈가 불유쾌한 냄새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앞으로는 파스타도 ‘진소(진한 소스)’와 ‘묽소(묽은 소스)’, ‘치뿌(치즈 뿌린)’와 ‘치뺀(치즈 뺀)’ 중 어느 쪽을 선호하느냐로 파(派)가 나뉠 수도 있지 않을까. 맛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