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에 건강이 나빠진 아버지를 간병하러 고향 광주를 자주 방문했다. 지내보니 수도권보다 편의 시설이 부족함을 느꼈다. 그중 복합 쇼핑몰이 하나도 없는 것이 이상했다. 알고 보니 2015년에 광주광역시와 신세계가 복합 쇼핑몰 조성을 추진했지만 소상공인과 서구 의회의 반대로 시간만 낭비하다 유력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후보의 반대로 완전히 중단된 일이 있었다. 신세계가 광주에 하려던 7000억 투자는 대전으로 옮겨가 직간접적으로 2만명 고용을 창출한 복합 쇼핑몰을 탄생시켰다. 코스트코 입점마저 실패로 돌아가자 광주 시민들은 대전이나 수도권으로 원정 쇼핑을 떠나야 했고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광주를 떠나야 했다.

지역 여론이 들끓자 지난 대선 윤석열 후보는 광주 복합 쇼핑몰 유치를 공약했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며 광주’광역시’에 없는 것 리스트가 퍼지고, 동생뻘 광주 청년들이 커뮤니티에서 ‘복합 쇼핑몰에 돈 내고 들어가냐’ ‘코스트코에 놀이기구라도 있냐’고 물어보는 댓글이 박제되어 놀림감이 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런데도 민주당과 진보 진영 인사들이 선거 때마다 90% 지지를 보내준 광주를 정치적 가두리 양식장 취급하는 듯한 막말을 이어가자 안타까움은 분노로 바뀌었다.

/일러스트=이철원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당 대선 후보 경선을 하던 2017년에 광주 복합 쇼핑몰 건립을 반대했지만 2021년 경기도지사 재임 시 화성에 복합 쇼핑몰을 건립하기로 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에게 감사 편지를 보냈다. 그런데도 지난 대선 윤석열 후보의 광주 복합 쇼핑몰 유치 공약을 극우 포퓰리즘이라 폄하했다. 심상정 정의당 전 대표는 2016년 이케아 고양점 기공식에 참여해 기념촬영을 했지만 정작 2017년 대선 때는 광주 복합 쇼핑몰 유치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자신의 지역구에는 복합 쇼핑몰이 필요하지만 광주에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뭘까?

민주당 법률지원단 설주완 변호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명품 시계 찬다고 부자 되는 건 아니지 않으냐’ 며 광주 시민들을 비하했다. 광주 신세계는 2020년 백화점 매출 12위로 다른 지방보다 높은 편에 속한다. 또 호남선 고속터미널과 연결된 센트럴시티에서 호남 사람들의 명품 매출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데도 광주 시민들이 가난한가? 나경채 정의당 전 공동대표는 ‘광주가 복합 쇼핑몰 없어도 5일장이 시개(3개)나 있다’며 구한말 위정척사파 같은 시대착오적 인식을 드러냈다. 광주’군(郡)’도 아니고 ‘광역시’에 5일장이 셋이나 남아있는 게 더 문제 아닌가?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지역 소상공인의 고통을 외면하고 상생과 연대의 광주 정신을 훼손해 표를 얻겠다는 계략’이라 했다. 복합 쇼핑몰이 많은 다른 대도시 소상공인들은 다 망했나? 아니다. 오히려 유동 인구가 늘어나고 상권이 형성되어 경제가 발전해 진정한 ‘상생과 연대’가 실현됐다. 대형 쇼핑몰 이용객 다수가 주변 상점을 같이 이용한다는 각종 통계와 조사 결과가 그걸 증명한다. 우원식 전 민주당 원내대표는 ‘광주의 투쟁 능력을 약화시키겠다는 속마음이 드러난 것’이라 했다. 광주에 태어난 사람은 좋은 편의 시설을 누리지도 못하고 진보 진영의 이념을 위해 죽을 때까지 투쟁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나기라도 했나? 그렇게 광주 정신을 강조하던 사람 중 일부는 광주의 아픈 역사를 정치적 자산 삼아 정치권에 입성한 뒤 모두가 슬픔에 잠긴 5·18 전야제 때 룸살롱에서 접대부 불러놓고 술판 벌이지 않았나.

진보를 참칭하는 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에게 광주란 무엇인가? 광주 사람들이 잘 살길 바라긴 하나?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저서 ‘부동산은 끝났다’에 ‘자기 집이 있으면 보수적, 없으면 진보적 투표 성향을 보인다’고 했던 것처럼 호남이 영원토록 경제적 약자, 민주화 투쟁의 도시로 남게 해 당신들만 지지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닌가? 광주 정신은 광주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관이고 이는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특정 정치 세력이 지역의 가치관을 멋대로 정해 놓고 따르도록 강요할 수 없다는 말이다. 광주 시민은 지금 여러 기업이 제공하는 편의 시설을 누리고 싶어 한다. 즉 자유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것이 지금의 광주 정신이고 이는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와 전혀 다르지 않다.

민주당이 내세우는 어젠다만을 따르던 예전과는 달리 이제는 내가 활동하는 시민 단체를 포함해 여러 광주 시민이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민주당은 이런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여 복합 쇼핑몰 유치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고, 국민의힘은 이를 대변해줄 대안 세력이 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