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파울루 벤투(55·포르투갈) 축구 대표팀 감독을 선임했던 김판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회(현 전력강화위원회) 위원장은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라면서 벤투를 선택한 이유를 차분히 풀어내던 김 위원장 기자회견은 지금도 회자된다. 그러나 그 뒤 대표팀 감독 선임은 밀실에서 이뤄지고 있다. 경질된 위르겐 클린스만(60·독일)을 감독으로 최종 낙점한 마이클 뮐러 전 전력강화위원장은 내부 위원들에게조차 과정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21일 새 사령탑을 뽑기 위해 출범한 정해성 신임 전략강화위원장이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 이면에는 바뀐 정관 문구가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정몽규 회장이 3연임에 성공했던 2021년, 이사회를 열어 전력강화위 관련 정관을 바꿨다. 그해 7월 제52조 전력강화위 1항이 ‘대표팀의 관리를 목적으로 설치한다’에서 ‘대표팀 운영에 대한 조언 및 자문을 목적으로 설치한다’가 됐다. ‘관리’에서 ‘조언 및 자문’으로 바뀌면서 전력강화위는 사실상 힘이 빠졌다. 같은 해 5월엔 대표팀운영규칙 12조 ‘각급 감독, 코치, 트레이너 등은… 전력강화위원회의 추천으로 이사회가 선임한다’가 ‘전력강화위원회 또는 기술발전위원회의 추천으로 이사회가 선임한다’로 변했다. 감독 선임 권한도 분산된 것이다.

2018년 김판곤 전 위원장은 대표팀 감독 선임에서 전권을 가졌다. 이에 협회 고위층이 위기감을 느꼈고, 정몽규 회장이 3선에 성공하면서 관련 정관과 규칙을 바꿨다는 해석이다. 김 전 위원장은 그 이후 협회를 떠나 말레이시아 대표팀 감독으로 떠났다. 김 전 위원장의 이 같은 퇴장 과정을 지켜봤던 전력강화위원들은 만감이 교차할 법하다. 내부 과정을 공개하는 모험을 했다가 협회 고위층에게 무슨 말을 들을지 모른다. 클린스만 선임 과정을 주도한 뮐러 위원장은 독일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왜 모두 내가 클린스만을 선택했다고 여기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 현 위원장은 뮐러와 다를 게 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6월까지 천천히 새 감독을 찾아도 되는데, 한 달 안에 국내에서 정식 감독을 찾겠다면서 논란을 부른다. 축구계에선 이게 과연 누구 뜻일까 왈가왈부한다. “전력강화위원장 주 업무가 (협회가 받는 외부) 비난을 사전에 맞는 ‘욕받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