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해야 하는데 공문 놓쳐서 교감한테 혼나는 송혜교, 에듀파인(학교 회계 시스템) 입력 틀려서 야근하는 송혜교, 업무에 치여 하루가 다르게 늙는 송혜교…”

고교 시절 끔찍한 학교 폭력으로 자퇴한 주인공(송혜교 분)이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가해자 딸의 담임으로 부임해 치밀한 복수를 펼치는 내용의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 빗대 현직 초등 교사가 블로그에 쓴 글이 화제다. 실제 초등학교 교사는 아이들 교육 외에 각종 행정 업무에 치이다 보니 드라마상 복수극은 현실에선 엄두도 못 낸다는 푸념이다.

이 글은 특히 교사 커뮤니티 등을 통해 공유되며 큰 호응을 얻었다. 단순한 재미를 떠나 교육과 무관한 잡무(雜務)에 치이느라 수업 준비도 벅찬 교직 현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더 글로리 포스터

실제로 교사들 사이 수업과 관련 없는 행정 업무가 과중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학교에는 교사 외에 회계·통계·구매 등 행정 업무를 맡는 행정직 공무원과 행정 실무사(공무직)가 있지만, 교사와 이들 간 업무가 명확히 구분돼 있지 않다. 지난 2021년 한국교총 조사에서 교사들은 ‘CCTV 등 시설물 관리’ ‘우유 급식 주문 및 정산’ ‘계약제 직원 채용’ 같은 가욋일을 맡고 있다고 답했다.

문제는 잡무가 많아 정작 수업 준비와 연구에 전념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국교육개발원 작년 조사를 보면 교사들이 일주일에 행정 업무에 쓰는 시간은 평균 7.23시간으로, 수업(16.47시간) 외 업무 중 가장 비율이 컸다. 수업 계획·준비(7.17시간)나 학생 상담(3.63시간), 전문성 개발(2.80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이다. 서울 초등학교 예체능부장을 맡았던 한 교사는 “국회의원이 요구한 자료라며 교내 체육 관련 비품 현황을 하루이틀 만에 전수조사해 내라는 공문이 내려오기도 한다”며 “이런 경우 학부모 상담이나 연구 모임은 어쩔 수 없이 후순위로 밀린다”고 했다.

선진국에선 보통 법령이나 지침을 통해 교사 업무를 교육·지도 활동으로 한정한다. 프랑스는 시행령에서 교사 직무 범위를 수업과 학생 개별 지도 등 ‘교육’으로 제한하고 회계·재정·물품 업무는 행정 직원이 맡도록 하고 있다. 영국도 교육부 지침으로 ‘교사에게 전문성과 판단이 필요하지 않은 행정·사무 업무를 강제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하고 있다.

201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당시 우리나라 교사가 행정 업무에 쏟는 시간은 주 5.4시간으로 조사 대상 48국 평균(2.7시간)의 두 배였다. 반면 수업 계획·준비는 6.3시간으로 평균(6.8시간)보다 적었다. 글로벌 인재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질 높은 학교교육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먼저다. 교사가 좋은 수업을 준비할 시간, 연구할 시간이 부족하면 그 피해는 학생에게 돌아가고 손해는 사회 전체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