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축구를 즐겨 보는 팬들은 북한 선수 한광성을 기억한다. 2015년 영국 가디언이 선정한 ‘차세대 축구 선수 50인’에 이름을 올리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만 18세였던 2017년 이탈리아 1부 리그 구단 칼리아리에 입단했다. 오스트리아에서 뛰었던 박광룡, 이탈리아 2부에서 뛰있던 최성혁도 있었지만, 한광성의 재능은 남달랐다. 20세엔 이탈리아 최고 명문 유벤투스에 합류했다.
당시 한광성은 본인 소셜미디어 인스타그램에 ‘꿈은 이루어진다!’라고 써뒀었다. 2002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이 내걸었던 응원 문구였다. 한광성은 한국 팬들의 응원 댓글에도 성심성의껏 답했다. ‘형님 좀 더 열심히 해서 레알 마드리드 갑시다’에 “고마워, 더 열심히 할게!”라고 했다. 이 계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없는 이유로 비공개가 됐다.
한광성의 유럽 꿈은 거기서 끝났다. 6개월 뒤 카타르 알 두하일SC로 갑작스레 보내졌다. 유벤투스 U-23(23세 이하) 팀에서 20경기에 나서는 등 기회를 받고 있던 참이어서 더 아쉬웠을 것이다. 연봉을 많이 주는 중동에서 뛰라는 북한 당국의 의지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해외에서 뛰는 프로 선수의 봉급은 북한의 주요 외화 벌이 수단 중 하나다. 한 이탈리아 언론은 “한광성은 카타르행 비행기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는 유럽에서 뛰기를 원했다”고 썼다.
한광성은 카타르, 말레이시아에서 뛰다가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대상에 올라 2021년 북한으로 돌아갔다. 그의 연봉이 북한 핵실험, 탄도미사일 개발에 쓰인다는 판단이었다. 한광성이 받았던 연봉 20억원가량은 그대로 북한 당국에 보내졌다고 한다. 한 달 생활비 200만원 정도가 한광성의 몫. 팀 동료들은 한광성이 그 나이 또래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청년이었다고 기억한다. 다만 북한 관련 질문만 하면 피하듯이 대화를 마쳤다고 한다. ‘경호’라고 불리는 사람 한 명이 한광성과 늘 동행했다는 점도 남달랐다.
그로부터 약 2년 동안 감감무소식이던 한광성이 최근 국제 무대에 나타났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시리아전에 선발 출전했다. 북한 A대표팀의 3년 만의 국제 무대 복귀전이기도 했다. 2차전이었던 미얀마와의 경기에선 1골 1도움과 함께 팀의 6대1 대승을 이끌었다. 움직임은 조금 둔해 보였지만 날카로운 감각만은 그대로였다.
자유롭게 유럽 무대를 누비는 비슷한 또래의 한국 선수 이강인을 보면서 한광성은 어떤 생각일지 궁금했다. 한광성의 재능은 이강인에게 뒤지지 않았다. 어디 한광성 뿐일까. 탐욕스러운 독재를 추종하느라 꽃 피지 못한 북한의 재능들은 축구 말고도 다양한 분야에서 셀 수 없을 것이다. 북한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인생을 빼앗겨야 했던 사람들이다. 그 억울함을 어디서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