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입장을 들어보려는 시늉조차 안 내더라고요. 이건 거의 ‘날치기’ 아닌가 싶네요.”

지난 28일 국회에서 야당이 양곡관리법(양곡법)을 단독 의결한 것을 두고,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가 내놓은 반응이다. 양곡법이 농림축산해양수산위원회 법안소위원회를 통과한 건 지난 21일이었다. 당시 농식품부 담당 직원들은 후속 절차인 안건조정위원회(안조위)에서 입장을 밝히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춰 국회로 향했다. 하지만 이날 안조위는 딱 ‘1시간’ 진행됐다고 한다. 이후 같은 날 농해수위 전체회의를 통과하더니, 27일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일주일 만에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입법 절차가 마무리됐다.

지난 2022년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대표 ‘1호 민생 법안’으로 양곡법을 처음 추진할 때는 달랐다. 이때 안조위는 2주간 열렸고, 국회 본회의 의결은 그로부터 3달 뒤에야 이뤄졌다. 올해 초 야당이 양곡법을 다시 추진했을 때도 안조위는 18일간 열렸다. 그런데 유독 이번에는 1시간 만에 끝낸 것이다. 정부선 “거대 야당이 다른 의견은 아예 무시를 하겠다는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야당은 한시라도 빨리 농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입법을 서둘렀다지만, 정치적 레토릭에 불과하다. 최근 쌀값은 가마니(80kg)당 18만원대로 너무 낮아서 문제인데, 양곡법이 도입되면 쌀값은 더욱 떨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양곡법은 쌀 판매 가격이 평년 수준 아래로 떨어지면 정부가 차액을 보상하도록 한다. 쌀 초과 생산량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사들이도록 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농민들은 다른 작물을 기르는 대신 일정 수입을 보장받는 쌀만 심게 되고, 공급은 넘쳐나게 된다.

게다가 가격이 내려도 정부에서 소득을 보장해주는 탓에, 농가가 쌀 품질을 개선할 유인조차 얻지 못한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양곡법을 두고 ‘농망법(農亡法)’이라는 표현까지 붙여가며 강하게 반대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공교롭게도 양곡법이 안조위를 통과할 당시는 이재명 대표가 선거법 1심 재판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25일 위증 교사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던 시점이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가리기 위해 양곡법을 무리하게 추진했다는 의심을 불러오는 대목이다. 이번에 의결된 양곡법에 대해서도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민주당은 ‘거부권 남발’로 이슈를 몰고 가려 할 것이다.

야당의 정쟁에 피해를 보는 국민들이다. 양곡법이 통과돼 쌀값이 더욱 하락하면 국민들로선 넘쳐나는 쌀을 사들이느라 매년 혈세 수조 원씩 쓰는 일을 감내해야 한다. 양곡법 통과 시 올해 1조2266억원인 정부의 양곡 매입비는 2030년에는 2조2925억원까지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쌀은 사라지고, 정치 논리만 남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