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를 받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1심 선고 공판이 열린 지난달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인근에서 더민주혁신회의 등 단체가 지지집회(왼쪽), 신자유연대 등 단체가 반대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과 위증 교사 혐의 재판 1심 결과가 각각 나온 지난달 15일과 25일 서울 서초동 현장을 취재했다. ‘광란(狂亂)의 도가니’라는 표현이 이 현장을 위해 만들어졌나 싶을 만큼 난장판이었다. 법원 인근에 모인 친명·반명 시위대 수천 명은 판사가 판결의 최종 결론이 담긴 주문(主文)을 읽기 직전까지 환호와 절규를 반복했다.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격렬한 반응이었다.

지난 15일 이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는 순간, 친명 시위대는 “으아아악!” “우리 대표님 어떡해!”라며 비명을 질렀다. 반명 시위대에선 “이재명 구속”이라는 구호와 함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 대표의 위증 교사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1심 재판이 열린 25일 풍경은 정반대였다. 친명 시위대는 “판사님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춤을 췄고, 반명 시위대는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며 “법원으로 쳐들어가자”고 했다.

‘죽음학의 대가’인 미국의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1926~2004)는 죽음에 직면한 환자의 심리 상태를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5단계로 분류했다. 서초동에서 본 친명·반명 시위대의 심리도 대략 이와 같았다. 처음에는 이 대표 유무죄에 “말도 안 돼”(부정)라고 했다가 금세 “이 사법부 미친 판사들”(분노)이라고 했다. 이어 “김건희/김혜경도 똑같이 하면 돼”(타협)라고 하더니, “우린 이제 어떡하지”(우울)라는 반응을 보이다가, “2심에선 무죄/유죄가 나오겠지”(수용)라며 민중가요·애국가를 부르고 해산했다.

데칼코마니 같은 서초동 풍경을 보며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한국의 정치가 얼마나 양극화됐는지 실감했다. 당시 탄핵 찬반 세력은 광화문·시청 광장을 빼앗길 수 없다며 대치했다. 헌법재판소가 2018년 법원 경계 100m 이내 지점에서 시위를 하면 1년 이하 징역 등에 처한다는 집회·시위법이 위헌이라고 판단하면서 ‘서초동 집회’는 일상이 됐다. ‘조국 사태’ 이후 법원 앞은 현직 법무부 장관, 대통령 부인, 제1·2야당 대표 등의 사법 이슈에 대한 찬성·반대 세(勢)를 겨루는 대련장이 됐다.

서울중앙지법 판사들은 이 대표 판결 등으로 대규모 집회가 있는 날마다 휴가를 내는 경우가 적잖다고 한다. 한 판사는 “흥분한 시위대가 법원으로 난입해 폭력 사태가 날까 무섭다”고 했다. 2019년 당시 시위대 수천 명이 여의도 국회의사당 경내에 뛰어들어 정당 최고위원의 안경을 날려버리고 경찰에게 욕설을 퍼부은 적이 있다. 2021년엔 미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머릿수와 목소리 크기로 자기 진영의 의지를 관철하겠다는 ‘떼법’이 전세계에서 창궐하고 있다. 오는 12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의 대법원 선고 때는 서초동의 광기가 어디까지 치솟을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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