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밤 10시에 훈련을 시작한다. 세계선수권대회를 불과 일주일 앞둔 시점에도 그랬다. 선수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유를 묻자 김도윤 감독은 “학교를 갔다 오면 지금밖에 시간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 ‘국가대표 훈련인데도 예외가 없느냐’라고 다시 묻자 “안타깝게도 그렇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출석 인정제는 학생 선수가 체육 활동으로 수업에 빠질 경우, 일정 범위 내에서 이를 출석으로 인정해주는 제도다. 과거에는 학년에 상관없이 수업 일수의 3분의 1(최대 63일)까지 인정됐다. 그러나 최서원(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부정 입학이 논란이 되면서 지금의 출석 인정제가 생겨났다. 현재 출석 인정 일수는 초등 20일, 중등 35일, 고등 50일이다. 대학생은 전체 수업의 절반 넘게 빠지면 학점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훈련 시간을 잡기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더러 나온다. 여타 비인기 종목과 다르게 여자 아이스하키는 경제적 문제에서 자유롭다. 1인당 2000만원이 넘는 장비들을 LG로부터 후원받고 있다. 덕분에 2023년 사상 최초로 세계선수권 디비전1 그룹A에 승격하기도 했고, 2024년 유스 올림픽 3대3에서 은메달을 목에 거는 등의 성과를 냈다.
더 날아오를 채비를 마친 여자 아이스하키가 발목을 잡힌 게 출석 인정제다. 이번 대표팀은 세대교체를 위해 학생들을 대거 선발했다. 1년 동안 아껴 써야 하는 출석 인정 일수를 4월에 전부 써버리기엔 부담이 심했다. 그래서 선수들이 수업을 듣고 모이는 늦은 밤에야 훈련을 시작한다. 한 선수는 춘천에서 수원까지 매일 통학하고 있다. 이러다 결국 하키 채를 놓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학업과 운동을 모두 잃지 말자는 제도 취지와는 달리 학생 선수들은 갈 길을 잃었다.
야구, 축구처럼 상대적으로 체계가 잘 갖춰진 종목도 애먹긴 마찬가지다. 한 대학 축구부 감독은 “일반 학생은 주전공에 집중할 수 있는데, 왜 스포츠를 전공하는 선수들은 훈련에 집중할 수 없느냐”라고 토로했다. 결국 일부 선수는 학업을 포기하기도 한다.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실업팀으로 향한 여자 탁구 신유빈이 대표적이다. 윔블던 14세부 남자 단식 우승자 조세혁도 중학교를 중퇴했다. 둘 다 현행 제도상 출석 요건을 채우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학습권을 최대한 보호하는 미국과 일본에서도 국제 대회를 위한 결석은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강하다. 출석 인정 일수를 숫자로 정해둔 국가는 한국이 유일무이하다.
물론 과거 엘리트 체육 중심의 교육 방식은 분명한 부작용을 낳았다. 그러나 지금은 학습권 보호라는 명분이 운동할 권리를 조금씩 침해한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현장에서는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더 이상 우리 무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여러 종목에서 나오고 있다.